尹 "의료 혁신, 국민 위한 것"…'의대 증원' 파란불?
'형사리스크 완화' 등 숙원사업 해결로 의료계 달래기
정부, '의대 증원' 의지 확고...대통령실-부처 잡음도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의료 혁신의 목적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지역 의료체계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히면서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한 필수 의료체계 확립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또 이른바 '의사면허박탈법' 개정 추진 등을 시사하면서, 이를 '협상 카드'로 내밀어 의료계와 '의대 정원 확대' 타협안을 도출할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현상 등으로 나타난 지역 필수 의료 위기 요인을 진단하고,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개선과 인력 수급 등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당초 윤 대통령이 이날 '의대 정원 확대'의 구체적인 수치까지 직접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관가를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다 의사 집단 진료거부, 의대생의 국가고시 거부 등으로 강하게 반발해 무산됐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과 세밀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은 확고한 기류다. 이날 회의에서 보고한 '필수의료혁신전략'에는 '인력 확충 기반 강화' 방안 중 하나로 "의대의 수용역량과 입시변동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증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날 관련 브리핑에서 "정부는 2025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목표로 관련 업무를 착실하게 추진해 왔다"면서 "의대 정원 확대는 현장의 수용 가능성과 교육 역량 등을 충분히 검토해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도 지난 16일 브리핑을 통해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해선 "지금까지 나온 (정원에 관한) 숫자는 없다"면서도 "2025년부터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의지를 정부가 밝힌 바 있다"고 했다. 이어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 위해 의료 부족 분야, 대학 교육 역량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향후 의료진과 의료진의 법적 리스크 완화, 수가 조정, 보상체계 개편 등 의료계 요구 사항을 '협상 카드'로 내세워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 혁신 추진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왜 필수진료 부분인 소아과에 의사가 부족한가. 저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대목동병원 사태 같은 게 작용했다고 본다"고 했다. '이대목동병원 사태'란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있던 미숙아가 사망해 의료진이 구속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의사가 환자 치료 관련해 늘 송사에 휘말리고 법원·검찰청·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게 되면 돈을 아무리 준다 해도 (하겠느냐)"라며 "정부가 책임보험 시스템을 잘 만들어서 일단은 형사 리스크를 완화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뇌 수술 전문가인데 그 양반이 사법처리 될만한 비리를 저질렀다. 그런데 지금 뇌 수술 해서 살려야 할 생명이 줄 서고 있다. 그러면 그 의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도 했다.
이를 위해 향후 정부·여당은 야당과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과 '의료법' 개정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필수의료 특례법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닌 의료행위에 대해선 형사처벌을 최소화해주는 특별법이다. 의료인이 범죄 구분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면허를 최대 5년간 제한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는데, 의료계에선 이른바 '의사면허박탈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법안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그냥 (인력을) 많이 많이 뽑다 보면, 알아서 월급이 적고 힘든 일에도 간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가다 보면 시장 경제, 수요·공급 시스템이 자리잡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면서 수가 체계 개편과 정부의 재정 투자 및 필수 중증, 지역 의료 종사자 보상 체계 개편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를 높이기 위해 1년간 약 1조 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투입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외에도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강화 전략으로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서울아산병원) 수준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국립대병원 등 거점기관을 필수의료 중추로 삼아 지역 병의원과 협력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정책이 큰 틀을 밝혔다. 안 사회수석은 이에 대해 "국립대병원과 지역거점병원까지 포함해 하나의 완결적인 전달체계를 재구축하겠다는 것"이라며 '한국 의료 시스템 재구조화' 작업이라고 밝혔다.
의료계는 이 같은 정부안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공백 없는 필수 의료 보장으로 국민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라면서 "협회도 긴밀히 협력해 필수 의료 현장의 취약점을 개선하고, 지원 방안이 보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두고 대통령실과 정부 간 잡음도 노출됐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의대 정원이 확대됐을 때 일부를 자율전공에서 선발할 수 있는 방안을 대학 총장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일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질책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율전공 입학 후 일부 의대 진학 허용'은 정부에서 전혀 검토되지 않은, 이 장관의 사견이라면서 "입시 정책은 정부 내에서 충분한 협의와 논의를 거쳐 확립된 후 나와야지, 아이디어로 나오는 건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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