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도 차 타고 다녔는데 이젠 산길 50km 달려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기자 2023. 10. 1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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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합창단 메조소프라노 송지영 씨가 서울 도림천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 4년 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기 시작한 그는 이젠 매일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산길을 뛰는 트레일러닝 50km도 거뜬히 완주하는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4년 전 어느 날 집 근처 서울 도림천을 걷는 사람들을 보고 무작정 걸었다. 그러자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모든 고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고, 기분이 상쾌했다. 그때부터 걷고 달렸다. 지금은 산길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50km도 거뜬히 완주한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인천시립합창단 메조소프라노 송지영 씨(45)는 이제는 매일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양종구 기자
“2019년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심했죠. 퇴근한 뒤 밖을 보니 사람들이 공원을 걷고 있었죠. 저도 나가 걸었어요. 한 7∼8km를 걸었죠. 돌아오면서는 살살 걷듯이 달려봤어요. 단 100m도 걷기 싫어하던 제가 달리다니…. 숨은 차지만 땀을 흠뻑 흘리고 났을 때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어요.”

그때부터 걷다가 500m, 1km를 달려봤다. 송 씨는 “거리를 조금씩 계속 늘려 갔다. 참고 더 잘 달려 보자고 달리니 어느 순간 ‘아, 이 기분 뭐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힘은 드는데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내가 무슨 고민을 했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스트레스도 날아갔다”고 했다. 2019년 가을, 마라톤 10km를 완주했다. 1시간 15분.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했지만 달리기를 멈추진 않았다. 그는 “혼자서 10km를 달릴 수 있게 되자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혼자서 마스크 쓰고 달리며 여기저기 찾아보니 크루(동아리)도 있고 마라톤 교실도 있었다. 그 무렵 오래전 만났던 오세진 작가(43)에게 연락해 함께 운동하자고 했다. 오 작가는 교통사고로 무너진 몸을 운동으로 일으켜 세운 뒤 마라톤, 트레일러닝, 등산에 빠져 지내고 있는 인물이다. 송 씨는 오 작가와 산을 찾으며 여자마라톤 국가대표 출신 권은주 프리랜서 감독(46)도 만났다. 그때 “마라톤 선수 출신 김용택 감독이 지도하는 바나나스포츠클럽에서 배우려 한다”고 하자 권 감독이 “아주 좋은 결정”이라고 해 본격적으로 배우며 달리게 됐다.

“매주 토요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훈련받았죠. 처음엔 레슨 받고 혼자서는 주중에 한 번 달리는 식으로 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래서는 마라톤 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주당 2번, 3번으로 늘렸죠. 지금은 거의 매일 새벽 5∼10km를 달리고 하루를 시작해요.”

온·오프라인 마라톤 동호회 휴먼레이스에도 가입했다. 송 씨는 “오 작가와 산을 찾으면서 ‘산도 달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휴먼레이스 회원 한 분이 트레일러닝 번개 모임을 소집하기에 참여하면서 산을 달리게 됐다”고 했다.

서울 관악산 인왕산 북악산은 물론 수도권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달렸다. 도로마라톤은 코로나19로 멈췄지만 산에서 열리는 트레일러닝 대회는 계속 이어졌다. 2021년 10월 서울의 산을 달리는 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 ‘서울 100K’에서 50km를 12시간에 완주했다. 그리고 2주 뒤 제주에서 열린 트랜스 제주 트레일러닝 50km를 10시간에 달렸다.

“산과 도로를 달리는 게 너무 즐거웠죠. 어느 순간 나만을 위해 달리는 것 같아서 남을 위해 달리는 것을 고민했어요. 우리 집 근처에 살던 친구가 시각장애인 마라톤 동반 주자(가이드러너)를 했던 게 생각나 연락했죠. 그래서 VMK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을 알게 됐죠. 시각장애인은 동반 주자가 없으면 달릴 수 없잖아요. 달리면서 남을 도울 수 있어 좋았어요.”

시각장애인과 함께 달리는 빛나눔동반주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간 날 때 시각장애인과 10∼20km를 함께 달렸다. 송 씨는 달리면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저는 새하얀 피부에 바짝 마른 몸이었죠. 먹는 것도 살찔까 봐 새가 모이 먹듯 했죠. 지금은 햇볕에 탄 구릿빛 피부가 아름답고 국수 한 그릇도 뚝딱이죠. 우리 단원들이 이런 저를 보고 놀랐죠. 달리며 굵어진 제 허벅다리도 자랑스러워요. 제 인생관이 확 바뀌었습니다.”

송 씨는 “과거 지나친 승부욕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이젠 ‘내 페이스대로 가면 되지 뭔 걱정?’이란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달리며 체력이 좋아진 것은 물론 마음의 여유까지 찾았다. 그는 “달리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다시 강조했다. 이젠 마라톤 전도사가 다 됐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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