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할매’가 가르쳐준 사랑[삶의 재발견/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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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마리아네) 스퇴거(1934∼)와 마가렛(마르가리타) 피사레크(1935∼2023·사진). 두 오스트리아 간호사는 20대에 대한민국 소록도로 왔다.
"떠난 작은 할매 생각하면마음 아프지. 근디, 질투도 나." "왜요?" "얼마나 좋겠어, 먼저 하느님 곁에 갔잖아! 부러워. 나도 이제 아흔이야. 가도 돼요, 언제든지." 모두 더 가지지 못해, 더 오래 살지 못해 불행한 이 시대에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존재는 분명 희귀하고, 또 희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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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마가렛이 낙상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만감이 교차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2016년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오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요양원의 작은 방이 떠올랐다. 말없이 창밖 공동묘지를 보던 작은 할매 마가렛은 무척 평온해 보였다. 문득, 이런 질문이 나왔다. “할머니, 사랑이 뭔가요?” 마가렛이 한참 뒤 대답했다. “사랑은…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거. 자유롭게, 서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두 분도 환우들에게 거동과 소통의 자유라는 사랑을 선사하고 싶었던 걸까. 이미 반쯤은 지상이 아닌 영원에 발을 담근 듯 묘하게 비어 있던 드맑은 갈색 눈동자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작은 할매, 마가렛은 이제 이 땅 어느 곳에도 없다. 시신마저 남김없이 인스브루크 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한 뒤 떠나셨다.
며칠 전 큰 할매 마리안느께 전화를 드렸다. 천식으로 다소 가쁜 숨소리 너머 가라앉은 목소리. “떠난 작은 할매 생각하면…마음 아프지. 근디, 질투도 나.” “왜요?” “얼마나 좋겠어, 먼저 하느님 곁에 갔잖아! 부러워. 나도 이제 아흔이야. 가도 돼요, 언제든지.” 모두 더 가지지 못해, 더 오래 살지 못해 불행한 이 시대에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존재는 분명 희귀하고, 또 희귀하다.
마가렛 할머니 방 벽에 붙어 있던 글자 ‘無(무)’가 떠오른다. 그렇게 당신은 무로 와서 무를 실천하고 가셨다. 지금쯤 생전에 그토록 사랑한 소록도 푸른 바다를 실컷 돌아보셨을까? 이제 당신의 자유도 만끽하시길. 천국에서 평화와 안식 누리시기를, 영원히.
성기영 작가·작곡가·‘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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