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즈벡인 사건 통역 돕다가 경찰 됐죠”
러시아 살던 조부모 1930년대 우즈벡 강제이주…스물한 살에 한국행
식당 알바·강사로 일하며 한국어 배워…“유학생 등 도와줄 때 보람”
“사건 관련 통역 업무를 돕다가 경찰이라는 꿈을 키웠고, 지금은 경찰관이 돼 있네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엘레나 순경(41)은 현재 대전 유성경찰서 유성지구대 소속 순찰팀원으로 지역 치안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인 3세인 그는 고려인으로서 경찰관이 된 첫 사례다. 2019년 7월 순경 공채(외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2020년 1월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로 발령받아 근무하다 지난 2월부터 대전경찰청 소속으로 지역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의 조부모는 과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인 마을에서 거주했지만, 1930년대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정책으로 수십 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고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했다.
김 순경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고향인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꼭 한번 한국에 오고 싶었다”며 “비록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나의 고향을 한국이라고 여겼다”고 회상했다.
그는 21세 때 한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해 한국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 그는 약 2년간 고향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네일아트 가게 근무, 영어 강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며 “겉모습은 한국인과 다르지 않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못하다 보니 외국인 취급을 받아 말 못할 어려움도 컸다”고 말했다.
그가 경찰관이 될 수 있었던 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건과 관련된 통역이라면 언제든지 경찰서로 달려갔던 노력 덕분이다.
그는 “우연찮은 기회로 대전경찰청의 사건 관련 통역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늦은 밤 또는 새벽 시간에 자다가도 통역을 위해 나갔다”며 “당시 한 형사분으로부터 ‘통역사 말고 우리 직원으로 일해볼 생각은 없나’라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경찰 시험을 준비했다”고 했다.
이후 경찰 외사 시험을 준비한 그는 40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김 순경이 근무하고 있는 대전 유성구에는 충남대와 카이스트 등이 위치해 유학생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지구대를 찾아 외국어로 도움을 요청할 때가 많다”며 “지구대에서는 이들과 언어의 장벽 없이 고충을 상담해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고 했다.
행정직으로 분류되는 외사 공채로 경찰관이 됐지만 김 순경은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주로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인 등이 관련된 사건의 통역을 맡았고, 여기서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는 지금까지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된 계기이자 경찰의 꿈을 키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경찰관이 됐지만 두 자녀의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고, 건강한 정신과 체력을 지닌 현장에 강한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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