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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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를 향해 적도를 넘는 비행기는 어김없이 쿵쾅거렸다.
그 난기류처럼 발리에서는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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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를 향해 적도를 넘는 비행기는 어김없이 쿵쾅거렸다. 뜨겁게 달궈져 빠르게 흐르는 난기류를 따라 덜덜 요동치는 날개. 커피를 따라주던 승무원들은 서둘러 정리했고 안전벨트 매라는 띵동 사인은 연신 울려댔다. "예상치 못한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흔들린다"는 기장의 목소리는 나른할 만큼 태연했지만 꼼짝없이 갇혀 오르락내리락하는 승객은 강제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 난기류처럼 발리에서는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엄격해야 할 입국 심사관이 슬며시 5달러 있냐고 물어본다든가, 풍경에 취해 걷다가는 길에 뚫린 수로에 풍덩 빠진다든가, 특급호텔에서 미끈한 양복차림으로 만났던 직원이 마을 사당에 퍼질러 앉아 제사에 올릴 제물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든가, 외국인이고 여행자고 상관없이 일 년에 하루는 집 밖에 못 나오고 전기도 불도 사용 금지고 공항까지 문을 닫아버리는 일들 말이다.
해안 절벽에 있는 풀빌라와 기나긴 해변을 낀 리조트로 유명해진 섬이지만, 바다는 불길함의 상징이라며 들어가기를 꺼리는 원주민도 의외로 많다. 고지대의 활화산 아궁산이 성스러운 방향, 그 반대쪽인 바다는 악령이 사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자수를 밟고 이동하는 신의 걸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야자수보다 높은 건물도 섬 안에 짓지 않는다.
매일같이 야자잎을 엮어 만든 공물 바구니 '짜낭 사리'를 바치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방금 전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진심이다. 가게 앞 길 옆을 가리지 않고 놓인 '짜낭 사리'는 정말 발에 차일 만큼 많은데, 발로 차거나 밟으면 불운이 온다고 굳게 믿으니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 아마도 21세기에서 가장 주술적인 일상을 사는 사람들. 여행자를 당혹감으로 때로는 낯선 설렘으로 요동치게 만드는 발리는 난기류처럼 예측 불가능한 매력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다시 북적이는 발리는 달라졌다. 말 많던 도착비자는 온라인으로 결제하고 QR코드만 내밀면 끝. 현금은 꺼낼 필요도 없었다. 한때 '택시마피아'라고 불리며 기세등등하던 공항택시기사는 차량공유 플랫폼의 픽업장소를 찾아가는 사람들 뒤통수만 쳐다봤다. 주유소도 편의점도 충전한 QR코드로 결제. 이른바 '밑장 빼기'로 유명하던 환전소도 한산하고, 여행자를 붙잡던 호객꾼도 투어예약 플랫폼에 손님을 뺏기고 파리만 날렸다. 택시나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음식포장도 호출 플랫폼으로 부르면 재깍 도착이다. 길모퉁이에 앉아 "어디가, 택시 필요해?" 부르는 할아버지는 이제 거의 자포자기한 목소리였다.
흥정할 필요 없이, 예상한 그대로 지불하고, 말 한마디 나눌 이유도 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신기술에 적응 못 한 누군가는 도태되고 누군가는 빠릿빠릿 이용하며, 예측 가능한 시스템의 세상으로 불쑥 진입한 발리. 하지만 소소한 사기꾼 하나 없이 편리했던 이번 여행이 더 행복했는지는 모르겠다. 귀국길 공항에 내려준 공유차량 기사는 조금은 비굴하게 웃으며 "별점 잘 부탁해"라고 했다. "걱정 말라" 답하며 오늘도 플랫폼 노동자들을 대신 감시하고 있구나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속이 뒤집혀도, 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과의 밀접 접촉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묵은 여행자라 그런가 보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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