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병원 폭격, 이스라엘 소행 아니다” 결론…중동지역 ‘격앙’
상공 영상 이미지·감청 등
미 국방부 정보 분석 근거로
“가자 무장단체 지하드 오폭”
사우디·요르단 등 비판 성명
곳곳 ‘반미·반이’ 시위 확산
미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참사 하루 만에 병원 폭격이 이스라엘군의 소행이 아니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주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격앙돼 있던 중동지역의 반이스라엘·반미 여론이 들끓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그것(병원 폭발)은 가자지구 내 테러리스트 그룹이 잘못 발사한 로켓의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471명의 민간인이 숨진 전날 병원 참사를 두고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소행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의 ‘오폭’이라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발표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판단의 근거로 미 국방부 조사를 언급했다.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도 바이든 대통령의 기자회견 뒤 “상공 영상 이미지, 감청, 오픈소스 정보 분석을 토대로 한 현재 평가는 이스라엘이 병원 폭발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발표 뒤 주요 서방 언론들도 이번 참사가 이스라엘군의 소행이 아닐 가능성에 점차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로켓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진지에서 발사됐음을 보여주는 위성 및 적외선 데이터를 미 정보 당국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CNN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미 정보기관이 초기 정보 분석 결과 이스라엘 소행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으며, 이스라엘 소행이라는 증거가 나왔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자체를 재고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BBC는 아직까지 폭발 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면서도 영상에 포착된 하늘의 섬광과 폭발 양상으로 볼 때 병원에 떨어진 것은 고장난 로켓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스라엘군의 전형적인 공격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복수의 전문가 견해를 보도했다. 가디언도 병원 마당에 생긴 구덩이의 크기 등으로 미뤄볼 때 이스라엘군이 쓰는 대형 항공폭탄인 합동정밀직격탄(JDAM)의 흔적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 분석을 전했다.
중동 여론은 정반대로, 이스라엘과 미국 측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연합, 이라크 등은 이스라엘의 병원 폭격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동지역 곳곳에선 격렬한 반이스라엘·반미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그간 의료시설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강조해 왔지만, 이런 발표와 달리 가자지구 내 병원 여러 곳이 공격을 받은 전례가 있다는 점이 불신을 키웠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7일 전쟁이 발발한 후 가자지구 내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이 51차례 자행돼 최소 15명의 의료인이 사망했다. 알아흘리 병원 폭발이 발생하기 나흘 전에도 이스라엘군은 병원에 폐쇄 명령을 내리며 ‘경고성’ 포탄 두 발을 발사한 바 있다고 CNN 등은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사건 발생 초기 이스라엘 관리들의 미심쩍은 대응도 중동권의 불신을 키웠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한 17일 네타냐후 총리의 디지털 보좌관이 “이스라엘 공군이 가자지구의 한 병원 내부에 있는 하마스 테러리스트 기지를 공격했다”는 글을 엑스(옛 트위터)에 올렸다. 이 게시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됐고, 그는 잘못된 포스팅을 자신이 공유했다며 사과했다. 모하마드 에마스리 도하대학원연구소 교수는 알자지라에 게재한 칼럼에서 2022년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된 알자지라 기자의 사례를 들며 “당시 이스라엘군은 무장단체에 의해 그가 살해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유엔 조사 결과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스라엘은 늘 잔학행위의 책임을 부인하고 팔레스타인 탓으로 돌려왔다”고 주장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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