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한국 주권 강탈했던 일본처럼 팔레스타인 짓밟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주민 칼리드 나시프 화상 인터뷰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하고 있는 일은 약 100년 전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강탈하며 저질렀던 행위와 같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칼리드 나시프(사진)는 이스라엘 측 행위를 일본의 침략전쟁에 비유하면서 한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의 가족과 친지 상당수는 이스라엘군 공격을 받고 있는 가자지구에 갇혀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 18일 이뤄진 경향신문 화상 인터뷰에서 격앙된 반응도, 울부짖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심정은 자포자기에 가까워 보였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일은 지난 75년 동안 끊임없이 되풀이돼온 일”이기 때문이다.

나시프는 전날 가자지구의 알아흘리 병원이 폭발하면서 무고한 민간인이 500명 가까이 숨졌다는 사실에 비통해했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아직까지 무사하지만, 이스라엘의 봉쇄로 전력이 모두 끊긴 상태라 소식을 듣는 일조차 쉽지 않다. 나시프는 “그들은 휴대폰 배터리를 아꼈다가 며칠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와 짧게 생존 소식만 전하고 끊곤 한다”고 말했다. 다음 전화가 걸려올 때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지만,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기 전에 이스라엘의 봉쇄가 풀리지 않으면 그 전화마저도 받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지상군 투입을 앞두고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통보했지만, 이집트와의 국경이 막혀 피란민들은 더 이상 갈 곳조차 없다. 나시프는 “내 가족도 피란을 가려 했지만, 남쪽까지 사방에서 미사일이 쏟아지는 통에 피란길에 오르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근 학교와 병원 등 비교적 안전한 건물 안에 모여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자지구 내에서 안전한 곳은 사실상 없다. 이날 유엔은 학교와 병원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살고 있는 서안지구 또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스라엘군의 감시가 더욱 삼엄해졌고, 가자지구 공습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되고 있다. 나시프는 “며칠 전에도 이스라엘 경찰이 이웃 마을에 몰려와서 총을 쏘고 사람들을 끌고 갔다”며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이 벌이는 폭력은 대놓고 더 가혹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서야 세계의 눈이 가자지구 참상에 쏠렸지만, 사실 이런 일은 지난 75년간 우리 일상”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나뉘어 살고 있는데,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거대한 감옥이 됐고, 서안지구도 끊임없는 유대인 정착촌 확장으로 팔레스타인인이 살 수 있는 땅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주권 회복 원하는 것뿐 미·서방 주도 협의, 근본 해결책 아냐”

나시프는 “이스라엘군이 불도저로 팔레스타인인의 집을 밀어버려도 우리는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면서 “항의하는 주민들은 끌려가거나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나시프는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분노에 휩싸여 격앙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하마스의 공격으로 많은 이스라엘인이 죽었고, 인질로 잡혔기 때문에 그들의 분노 역시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가자지구는 매우 복잡하고 밀집된 곳이라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주민들이 대학살을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군 또한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법을 도출하지 않는 한 이·팔 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국이나 서방이 주도하는 해결책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을 수 있는 국제협의체를 원하고 있다”면서 “팔레스타인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모든 나라가 참여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의 목소리를 듣고 균형 잡힌 해법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시프는 인터뷰를 마치며 팔레스타인 상황을 100년 전 한국이 겪은 역사에 빗대 설명했다.

“한국 또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나. 한국은 주권을 강탈한 일본에 대항해 싸웠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강제점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주권을 되찾길 원하는 것뿐이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