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나 혼자 짝사랑의 나라, 폴란드
유럽은 좀 얄밉다. 지구는 명확하게 둥근데 무슨 자격으로 근동, 중동, 극동(極東)이라는 제 중심의 거리에 따른 얄팍한 명칭을 입에 올리는가. 우리라고 말서(末西)라는 말을 몰라서 저런 용어를 안 쓰는 게 아니다. 아무튼, 그런 해묵은 지역색은 접어두고 세계지도를 본다. 지지고 볶으며 자기들끼리 사는 소란으로 늘 떠들썩하다.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유럽.
낯설기 짝이 없는 한 뼘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섬나라 영국과 그 이웃한테 늘 당해온 아일랜드, 노벨을 배출한 스칸디나비아반도, 스피노자의 네덜란드, 맥주의 독일, 와인의 프랑스, 건축의 스페인과 축구로 남북한에 한 번씩 혼쭐이 난 포르투갈이 해안선을 끼고 도열한 게 내 빈약한 지리 상식이다. 그리고 내륙으로 들어가면 엉겨붙은 국기들이 펄럭이지만 그 나라가 다 그 나라 같다. 이름도 쉽게 입에 감기지 않는 복잡한 국가들.
그런 배경의 저 유럽에서 폴란드는 좀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름만으로 다듬잇돌처럼 야무지고, 해바라기처럼 그윽하며, 어딘가 따뜻한 심장으로 살아가는 곳이라는 느낌을 풍긴다. 아직 가본 적 없는 폴란드에 대한 나 혼자의 짝사랑.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추일서정’, 김광균)로 시작하는 시를 통해서 고등학교 교실에서 깔깔하게 만난 폴란드. 어쩌면 우리와 비슷하게 외세에 시달린 어두운 경험을 공유하기에 더 눈길이 가는 나라. 아우슈비츠를 우묵하게 품고 있는 폴란드.
지구의 시간은 평행이어서 이맘때면 그 어디든 낙엽이 뒹굴고 또 노벨상의 계절이 온다. 매번 목을 매지만 올해도 우리를 정확하게 비켜 가는데, 폴란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만 다섯이다. 지금 내 머리맡을 지키는 시집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올해 시월의 연휴는 무척 길었다. 훌빈해진 도시에서 더욱 허전한 심장을 위로해 준 건 폴란드의 시였다. “거대한 대도시에도 이따금 고요가 깃들어/ 바람결에 실려 온 지난해 낙엽이/ 소멸을 향한 끊임없는 방랑을 지속하며/ 보도에서 뒹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고요’, 아담 자가예프스키) 그것으로는 고독을 치유하기에 조금 모자란 느낌이었는데 마침 눈에 띄는 영화가 있었으니 <당나귀 EO>였다. 아, 신통하게도 폴란드 영화.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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