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버스준공영제 20년
‘버스’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에겐 학창 시절의 ‘낭만’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겐 승객이 ‘짐짝’ 취급받던 불쾌한 기억들이 선명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애를 태우거나, 무정차 통과하는 버스를 지켜봐야 했던 경험들도 있다. 2004년 이전까지 서울에서 수시로 벌어졌던 현실이다. 버스사업권이라는 ‘특허권’을 갖고 있는 민간 사업자들이 돈이 되는 노선은 중복 운행하고, 난폭·과속 운전을 해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둘러싼 문제는 2004년 7월1일 전국 최초로 서울에서 시행된 ‘버스준공영제’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버스업체, 시민단체,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1차로 장거리·중복으로 얼룩진 버스노선을 간선과 지선으로 일목요연하게 바꿨다. 국제 표준을 채택한 교통카드가 새로 도입됐고, 중앙버스전용차로제가 확대 운영됐다. 특히 갈아탈 때마다 요금을 내던 독립요금제가 5회째 대중교통 수단까지는 환승 횟수에 관계없이 운행거리에 따라 요금을 내는 거리비례 통합요금제로 바뀌었다.
버스준공영제는 공공성이 요구되는 노선과 운행 방식에 대한 결정권은 서울시가 행사하고 운전기사 관리 등 버스 운영은 민간 사업자에 맡기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대신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협의해 수입금 공동관리와 표준 운송비용을 정한 뒤 버스업체의 운행비용과 적정이윤을 보장했다.
통합요금제에 대한 시민들의 체감효과가 커지면서 인천시 버스(2005년 10월16일)와 경기도 버스(2006년 7월)도 교통카드 호환과 통합환승할인 대열에 동참했다. 준공영제는 부산·대구·인천 등 모든 광역시와 경기·경남·강원·충북 등의 기초지자체로 확산됐다.
버스준공영제가 내년이면 20년째가 된다. 교통환경의 변화와 함께 버스준공영제도 새로운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우선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수도권에서는 시·도 경계를 넘는 역외교통이 급증했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재정지원은 서울의 경우 10% 수준으로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은 7000억원을 차입하고, 서울교통공사는 1조4000억원의 공사채를 발행했다. 이 같은 적자 누적은 대중교통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안전까지 위협할 수도 있다. 서울시 등 지자체는 회계의 80% 이상이 도로·철도에 편중된 채 대중교통 지원은 5%에 불과한 ‘교통시설특별회계 교통체계관리계정’의 재원 배분 비율 변경을 수년째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회피하고 있다.
지자체의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도 적극 요구된다. 서울 대중교통의 수송부담률은 2011년 이후 65%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시내버스도 2011년 28%를 정점으로 매년 감소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내년부터 월 6만5000원에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를 도입하겠다는 정책은 신선하다.
준공영제의 계약주체인 지자체와 버스업계의 공공성·서비스 강화 노력도 절실하다. 지자체는 버스업계의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최하위 수준의 버스업체도 이자율 이상의 기본이윤을 보장해주는 현행 준공영제의 변화도 필요하다. 구체적 방안으로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논리도 나오고 있어 이에 대한 방안 등을 정리할 필요도 있다. 황보연 서울시립대 교수는 “우수한 업체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을 유도해 시내버스 운영에 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서비스 우수업체 중심으로 버스업계를 재편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서울시의회 등에서 제기된 사모펀드의 버스회사 진출에 대한 논란을 계기로 버스업계 재편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국내 최대 학술단체인 대한교통학회가 지난 8월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는 “개인·친족 중심의 기존 버스회사보다는 금융자본의 진입으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등 사모펀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이 쏟아지기도 했다. 사모펀드의 버스업계 진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는 이번 기회에 사모펀드의 ‘진입 기준’과 ‘관리 방안’을 적극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밖에 서울시 앞에서 수개월째 집회 중인 버스 노동자들의 다양한 요구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하는 등 20년이 되는 버스준공영제의 질적 향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한대광 사회에디터 cho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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