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나쁜 PVC’가 학교에 사용된다
나는 쓰레기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상점에서도 일하고 환경단체에서도 일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는 상점 갈 때마다 없던데 돈 수금만 하냐는 오해를 산다. 반대로 단체에 출근했다 하면 상점 말고 딴 일로 돈 벌어야 하냐고 걱정들 한다. 여러 일을 하는 ‘N 잡러’나 프리랜서들은 주변에 설명할 일이 많다. 정작 내게는 이 일이나 저 일이나, ‘본캐’나 ‘부캐’나, 사장이나 환경 활동가나, 플라스틱 파파라치와 같은 한통속의 일인데 말이다. 제로 웨이스트 상점은 플라스틱 껍데기인 포장을 없애는 데 집중하고, 환경단체는 껍데기 속 알맹이가 유해한 플라스틱인지 캐묻는 활동을 한다. 즉 알맹이든 껍데기든 플라스틱의 자장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이다. 금연 광고를 하면서 담배를 파는 정부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과자보다 속사정이 단출하다.
요즘엔 칠판, 학급 게시판, 사물함 등 초등학교 곳곳을 총처럼 생긴 X선 형광분석기로 찍고 있다. 그러면 그 안에 납·카드뮴 등의 중금속이 들어 있는지, 유해한 플라스틱인지 아닌지 판별된다. 조사 결과 어린이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제품은 대부분 플라스틱 중합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문, 창틀, 사물함 등에 사용되는 나무무늬 시트지, 플라스틱 혹은 합성섬유 학급 게시판, 플라스틱 책 자리표 등이 그렇다. 학급 게시판의 경우 나쁜 플라스틱인 PVC가 마구 사용되었는데, 2022~2023년 조사한 전국 36개 초등학교 게시판 중 PVC 제품이 무려 27개(72%)였다.
PVC는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플라스틱이다. 그러나 이름부터가 ‘염화비닐’로 염소가 다량 들어 있으며 소각 시 다이옥신 등 염소 계열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소각 외에도 생산, 사용, 폐기 전 단계에 걸쳐 독성가스와 환경 호르몬이 발생해 반드시 분리배출하라고 백과사전에 나온다. 그런데 정작 분리배출해봤자다. 염소 성분이 재활용 기계를 부식시키거나 고장을 일으켜 PVC는 재활용 과정에서 폐기 처분되기 쉽다. 이렇게 PVC는 매립 혹은 소각되는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서도 유해물질을 내뿜는다. PVC에는 플라스틱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가소제가 들어 있는데, 이 가소제에서 환경 호르몬이 나오기도 한다. 이번에 검사를 진행한 12개 PVC 게시판에서도 100% 프탈레이트가 검출됐고 심지어 법정 기준치를 초과했다. 어린이가 생활하는 교실에 환경 호르몬으로 점철된 게시판이라니! 시중에는 PVC가 아닌 게시판이 나와 있고 이 게시판에서는 프탈레이트가 불검출됐다.
전 세계적으로 식품 포장재에 PVC 사용을 금지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PVC 랩 사용이 금지됐으나 연 매출 10억원 이상에만 적용된다. 가정용 혹은 대형 업소를 제외하면 분식점·중국집·떡집 등에선 여전히 뜨거운 음식에 PVC 랩을 두른다. 내 용기를 사용하면 쓰레기뿐 아니라 환경 호르몬 노출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1국민 1용기 의무 지참’보다 예외 없는 PVC 식품 포장재 사용 금지와 어린이 생활공간 내 PVC 관리가 합리적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플라스틱 중에서도 PVC 제품을 피하고 학교 게시판이 안전한지 묻는 캠페인에 참여해주시라(yujuschool.com 유자학교). 이 목소리를 모아 교육청에 안전한 게시판 사용을 요청할 예정이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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