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테스형의 교실 이데아

기자 2023. 10.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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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의 마지막 장면. 민주주의 교육은 소란스럽다.

2008년 6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가 차지했다. 프랑스로서는 <사탄의 태양 아래>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21년 만의 쾌거였다. <클래스>는 질식할 것 같은 프랑스 공교육의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로 오인할 만큼 사실적이다.

<클래스>의 카메라는 파리 20구 소재 공립중학교의 한 교실에 밀착한다. 교사였던 원작자 프랑수아 베고도가 주연 교사를 맡고, 실제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출연해 생생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불어 교사 마랭은 학기 시작부터 곤혹스럽다. 이민자 자녀들이 대거 섞인 교실은 몽롱한 학습의욕과 사춘기 말단의 과민으로 불순하다.

질문을 유도하는 선생에게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사실이냐 질문하는 망동. 마랭은 사실이 아니지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게 조롱당할 일은 아니라고 교육한다. 책읽기를 요청하면 읽을 기분 아니라고 투덜댄다. 기분이 나쁜 이유를 물으면 학생에 대한 존경심 없는 선생 탓이라 비난한다. 시종 불만을 품고 일관된 공격성으로 학생들은 선생을 자극한다.

학생인권이 묵살되던 과거 선생들이라면 서슴없이 단죄할 ‘동태눈깔을 뜨고 버르장머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체벌 대상이 즐비하다. 교사의 한마디에 몇배로 이죽거리는 학생들의 오만방자함에 <클래스>를 보는 관객의 교감 신경은 급항진된다.

<클래스>의 마랭 선생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이상적인, 뒤집어보면 비현실적인 키팅 선생이 아니다. 학생들의 경솔과 무례를 바른 말과 태도로 교정해나가던 마랭도 결국 평정심을 잃는다. 학생들의 비열한 이간질에 격노하여 여학생들에게 욕설을 뱉은 게 화근이 돼 신망을 잃는다. 마랭의 잘못이라면 선생에서 잠시 인간이 된 것뿐이다. 인간으로서 부정하던 마랭은 선생으로서 반성하고 학생들에게 사과한다.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태도로 교육한다. 아이들은 감동은커녕 선생을 더 깔보고 빈정댄다. 이 시대의 선생과 학생은 벽과 마주한 또 다른 벽이다.

학기 말, 폭력 행위로 위태롭던 학생은 퇴학을 당하고, 그나마 수업에 충실하던 학생은 불법체류자인 어머니를 따라 추방될 위기다. 프랑스 사회의 문제는 학교로 삼투되어 있다. 어제 같은 오늘을 사는 학생들은 오늘 같은 내일을 위해 책을 펼 의지가 없다. 학년이 올라가면 그만큼 벽은 높아진다.

마랭 선생은 학생들에게 학기 중에 배운 게 있는지 묻는다. 피타고라스 정리나 화학 공식을 배웠다는 심드렁한 답을 듣던 마랭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펴진다. 자신을 궁지에 몰았던 여학생이 플라톤의 <국가>를 읽었고, 나쁘지 않았다며 수줍게 웃는다. 내용을 묻자 소크라테스가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확신이 있냐고 질문했고, 사람들이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하는 게 재미있단다. 이어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사랑, 종교, 인간 등 모든 것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는데, 읽다 보니 소크라테스는 굉장한 사람 같다는 소감을 이어간다.

감독은 교육의 본질을 무식과 몰이해라는 벽과 벽 사이에서 끊임없이 두드리는 질문에서 찾는다. 질문함으로써 편벽을 깨는 소크라테스처럼, 공동선에 대한 부단한 질문 끝에 도달한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체득하는 도장으로서의 교실이 전제되어야 교육은 제대로 작동한다.

젊은 교사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 장관은 학생인권을 우선시하는 데서 원인을 찾았다. 헛방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종북주사파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한국을 붕괴시키려 했다며 이념 프레임을 씌운다. 해괴하다.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보호됨을 우려하는 윤석열 정부하에서 교육에 대한 기대는 접는다.

테스형의 가르침은 당분간 교실의 이데아로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정일 영화 칼럼니스트

서정일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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