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과학 한 스푼] 기름진 맛 조미료?
제가 좋아하는 튀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기름진 맛도 하나의 맛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인데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맛을 보통 5가지로 구분합니다.
19세기까지는 단맛·짠맛·신맛·쓴맛의 4가지 맛만 인정됐습니다. 이 4가지 기본맛 그리고 이들이 서로 혼합된 것을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맛이라 본 것입니다. 기원전 4세기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주장을 펼친 이래 거의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새롭게 감칠맛이 등장한 것은 1908년 도쿄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에 의해서입니다. 예전부터 일본인들이 ‘우마미’라 부르던 것을 또 다른 별개의 기본맛이라 주장하고 나선 것이죠. 그는 다시마 국물을 졸이는 과정에서 갈색의 결정체를 얻었는데, 이것이 바로 감칠맛의 원인물질인 ‘글루탐산’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이 물질이 물에 더 잘 녹도록 글루탐산나트륨(MSG)의 형태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맛이 또 하나의 기본맛으로 확실히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맛에 관한 오랜 전통을 깨뜨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칠맛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2000년대 들어 발견된 ‘수용체’입니다.
혀의 표면에는 ‘미뢰’라 불리는 꽃봉우리 모양의 조직이 1만개 정도 있는데, 이 미뢰는 다시 100여개의 미각세포들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이 세포에는 세포 밖 물질들에 의한 물리적, 화학적 자극에 반응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수용체인데요, 각각의 수용체는 각기 다른 맛 성분들과 반응해 그 신호를 우리 뇌로 전달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맛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기원전 고대인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맛이 서로 다른 것은 그 맛과 관련된 물질의 입자가 서로 다른 모양을 갖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단맛의 입자는 둥글고, 신맛은 각진 모양이라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근거 없는 가설이었지만, 그 상상력만큼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기름진 맛 또한 새로운 기본맛으로 추가될지도 모릅니다. 2012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의과대학 연구팀이 기름진 맛에 상응하는 CD36이라는 수용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수용체는 지방의 분해물질과 반응해 이를 독립적인 맛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퍼듀대학의 리처드 매티스 교수가 이와 관련된 맛을 ‘올레오구스투스’라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라틴어로 ‘기름지고 맛있다’라는 뜻입니다.
글루탐산나트륨을 이용한 조미료 ‘아지노모토’는 1909년 처음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다시마, 멸치, 버섯 등을 오랫동안 우려내지 않아도,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강렬한 감칠맛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죠. 만약 기름진 맛이 또 하나의 기본맛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감칠맛처럼 기름진 맛을 내는 합성조미료가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비만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마음껏 기름진 맛을 즐기는 시대가 도래하지는 않을까요?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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