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의 외교만사 外交萬思] 결미통중의 전략을 추진하자
심상찮다. 국제정치에서 전쟁의 띠가 확산되고 있다. 그 띠가 종국에는 한반도까지 확산될 우려가 크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곳이었다. 중간지대 혹은 파쇄지대인 것이다. 지정학 전략의 대가 브레진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5대 지역 중 하나로 한반도를 꼽았다. 실제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역내 세력 변동시기마다 전쟁과 수난에서 벗어난 예를 찾기 어렵다. 한국전쟁 역시 냉전으로 인한 유럽에서의 세력충돌이 귀결된 것이다. 대한민국이 국제정세에 기민하고, 외교적 역량을 강화하고, 자강의 투철한 의식을 지녀야 하는 이유다. 현재의 한국은 이를 잊고 사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니제르 등 아프리카에서의 연이은 쿠데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단절된 사안이 아니다. 미국 패권에 입각한 국제질서 붕괴와 혼돈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상징한다. 국제정치 용어로는 다극화시대가 급격히 진행 중이다. 준비가 안 되고, 과거 향수에 머물고 있는 우리에게는 지옥의 문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화의 힘은 급격히 약화되고 갈등과 충돌의 족쇄는 풀렸다.
그 변화의 내면으로는 미국 자유주의 단극체제의 붕괴를 지적할 수 있다. 미국 스스로도 더 이상 미국 패권의 유지가 가능하지 않고 복원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국내적으로 오늘날의 미국은 마치 남북전쟁 전야와 같다. 국제적으로 바이든과 블링컨의 중동외교 실패는 미국 역량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다. 중국은 구매력 기준으로는 미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GDP 기준으로 미국의 70%를 넘어섰다. 결국은 추월할 것이다. “과학적 유물론자”들인 중국의 지도부는 서방 매체와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국제관계에서 상부구조인 외교안보 부문의 개혁보다는 하부구조인 경제력과 경제관계에 집중하여 세계를 변혁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관으로는 이러한 중국의 전략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대응책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중국은 자국의 안보환경을 지정학-지경학-국제질서체계로 구분한다. 자국에 불리한 지정학적 요인은 최소화, 지경학적인 주도권은 최대화, 국제질서 체계는 유엔과 다자주의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추동하고자 한다.
세 번째는 과거 제3세계라 지칭했던 Global South의 적극적인 등장이다. 인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와 그 밖에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미·중 전략경쟁 시기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에 걸맞은 질서를 추구하고자 한다. 국제정치 용어로 단순한 동맹/균형이나 편승의 추구가 아니라 이들을 포함한 양자 사이의 다양한 헤징 정책을 구사한다, 이러한 헤징 정책에는 이제 서유럽의 대표적인 국가들인 독일과 프랑스가 가세하고 있다. 일본도 외양으로는 동맹과 균형에 집중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헤징을 잘 구사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북한은 이러한 변화를 “신냉전”이라며 가장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자강정책을 기조로 하면서, 핵과 미사일 역량을 확보하였고, 북·중·러 연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북·러의 급격한 안보협력은 그 성공의 일면을 보여준다. 중국은 이 냉전적 연대에 참여하는 데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은 북한의 기세가 확대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윤석열 외교의 핵심의제는 “글로벌 중추 국가 구상”이다. 한국은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확고하다. 미국과의 동맹을 확대하고,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을 공고히 하는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외교·안보·경제적 도전에 대응하겠다는 포괄적인 전략구상이다. 공간적으로는 이 협력의 축이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압도적 역량에 대한 신뢰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담고 있다. 이 구상들은 여전히 미국에 대한 신뢰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중국에 가장 부정적인 여론에 힘을 얻었다. 이 혼돈스러운 시기에 미국과의 관계 강화는 국민들에게 심리적 안정성을 부여하고, 일본과도 경제적인 실리를 거두고 있다. 추후 새로이 형성될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도 확대해 놓았다. 북한의 의지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힘의 논리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구상에 대한 안티테제의 성격이 강하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구상은 이제 그 비용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은 우리의 이익을 미국의 글로벌 이익과 합치시키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우-러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양안 충돌이 한반도로 연계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시기 가치관에 입각한 국제정치관은 실제와 부합하지도 않고, 실리를 크게 위협한다. 통상국가인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시장 공간인 글로벌 사우스를 분리하고, 시장, 자원, 희소재료의 핵심 공급처인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다. 미국은 이들을 통제할 역량은 없다. 중국의 영향력은 오히려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선택은 우-러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향후 한반도 사태에서도 그러한 역량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 각국과 미국 주요 인사들이 최근 들어 급히 중국으로 달려가는 이유이다.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겨우 도달한 선진국의 역량을 무모하게 소진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종잣돈으로 삼아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것인가의 단계에 있다.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 소통을 잘하는(結美通中) 전략 조정이 필요하다. 국제무대에서는 충돌과 투쟁보다는 협력과 평화를 증진하는 데 역량을 더 쏟아야 한다. 세계 3위 수준의 중국 연구역량을 보유한 한국이 한·중관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과정은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신뢰하는 것은 이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증명하기보다는 국내적으로 이를 구현하여 본을 보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제정치는 신들의 공간이다. 모두가 각자 선(善)이고 정의이다.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신들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넘어 주장하려 하면 국가 운명을 걸든지 아니면 천상계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한다. 누란의 위기를 가져올 국제정치의 지각 변동에 대응할 정치지도자들의 식견 제고, 인재양성, 자원동원 체계에 대한 깊은 고민과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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