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정 단국대 교수 “팔레스타인 문제, 정치·이념 떠나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에 대해 논해야”
‘난민 수용 거부’ 이집트엔 “대의 없다”
이란·헤즈볼라 개입 가능성도 작아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에 대해 논해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현지시간) 새벽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피의 보복’을 단행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 사망자는 5000명에 육박했고, 이 중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가 3700명을 넘어섰다. 17일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병원에서 폭발 참사가 발생해 약 50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물과 식량, 의약품 등의 보급을 모두 차단했다. 봉쇄 11일째에 접어들면서 심각한 식수난에 직면한 가자지구 주민들은 간이 우물을 파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다. 그야말로 ‘생지옥’에 갇힌 모양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잔혹한 전쟁이 언제 끝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는 1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내 ‘인간의 권리’를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다”며 전 세계 시민사회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팔레스타인 현지 지인들로부터 들은 가자지구 상황은 어떤가.
“언론 보도대로다. 죽음의 냄새가 사방에서 난다고 표현하더라. 1948년 5월 이스라엘 국가 수립 전후 상황과 똑같다고 본다. 당시에도 시온주의 무장단체들이 팔레스타인 민가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학살했다. 무서우니까 다들 도망갔다. 피신했던 사람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75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가자지구를 봉쇄한 채 폭격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목표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하늘만 뚫린 감옥’인 가자지구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주민들을 모두 축출하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들고나온 지도를 봐라. 이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지워져 있다.”
- 애초에 팔레스타인은 없는 국가로 여겨진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당시 이집트가 관할하고 있던 가자지구를 점령한다. 이후 1979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중재로 1차 중동평화협정이 맺어지는데, 이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의 경계를 국경으로 획정한다. 그럼 가자지구는 누구 땅인가? 이스라엘 땅이다. 이집트 주권과 이스라엘 주권만 있는 셈이다. 그 다음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중재로 1994년 서안지구를 관할하던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국경을 획정한다. 그런데 어디로 국경을 획정했냐면 요르단강을 중심으로 했다. 그럼 서안지구는 누구 땅인가. 이스라엘이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모두 이스라엘 땅인 것으로 이집트와 요르단이 인정한 것이다. 국제법상 팔레스타인은 점령 지역(Occupied Territory)이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저런 지도를 들고나올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과 아랍계 인구는 이미 유대인 인구를 앞질렀고 계속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시민권을 줄 생각이 없으니 쫓아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을 축출하려 해도 이집트 쪽 국경이 열리지 않으니 주민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갈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예전부터 누구도 가난한 가자지구 사람들을 반기지 않았다. 아랍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이들을 수용해줬으면 하고 있지만, 이집트도 ‘너희들이 들어오면 안보가 위험해진다’며 버티고 있다. 미국은 한때 이집트 시나이반도에 공업단지를 세워서 가자지구 주민들이 출퇴근 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는데, 말이 출퇴근이지 사실상 축출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은 또 요르단강 서안지구 사람들을 요르단이 받아줬으면 하지만, 요르단도 자국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받을 수 없다는 태도다.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대의를 이야기하지만, 저는 애초에 이들에게도 그런 대의는 없다고 본다.”
- 이스라엘은 계속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을 압박하며 저울질 하고 있다.
“제 생각에는 투입하지 않을 것 같고, 하더라도 제한적으로 할 것이라고 본다. 지상군을 투입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건 가자지구 주민들한테 빨리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다. 특히 가자지구 북부 사람들에게 빨리 집을 비우고 나가라고 하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인구 밀도가 높은데 북부에 있는 사람을 남부로 밀면 어떻게 되겠는가.”
-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절멸하기 위해서는 지상군 투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하마스 절멸이 가능한가.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하마스 고위층은 대부분 카타르에 있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도 카타르에 있다. 하마스를 제거하겠다는 말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하니예는 카타르에서 외교 활동을 하면서 이란 당국 관계자과 접촉하고 있다.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도 만나지 않았나.”
- 이란과 헤즈볼라는 참전할까.
“정식으로 참전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이스라엘로선 오히려 헤즈볼라가 뛰어들길 바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가스전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헤즈볼라가 전쟁에 개입하면 가스전을 점령할 명분이 생긴다. 실제로 전쟁을 한다고 했을 때 누가 이기겠나. 다만 이란이 하마스 편을 드는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내부 문제 요인도 크다. 지난해 이란에서 500명 이상이 처형됐다. 올해도 9월 초까지 499명이 처형됐다. 정권 반대 여론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이란은 현재 ‘이슬람 대의’ 아니면 의지할 곳이 없다.”
- 가자지구의 끔찍한 참상 앞에서 국제사회도 무력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연합(EU)은 거의 미국 정책을 따라왔다고 봐야 한다. 기대할 게 없다. 세계 거의 모든 정부는 이스라엘 편이다. 팔레스타인 편을 들어서 이득 볼 게 없지 않나. 자국 이익을 훼손하면서까지 팔레스타인 대의를 지지할 정부는 없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시민사회가 팔레스타인 인권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며 압박해야 한다. 이미 가자지구 인구 80%가 난민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대의는 없다. 그 사이에서 주민들이 너무나 참혹한 현실에 놓였다. 우리는 지금 정치적·이념적인 개념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에 대해 논해야 한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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