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평화가 위험하다' 경기도 여성계는 전쟁을 우려했다
우크라-러시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민간인 피해 확산에 공분
참가자들 전쟁 방지 위한 道·여성계 역할, 평화교육 중요성 강조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 여성계가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교육의 중요성을 한목소리로 냈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19일 오후 수원 경기여성비전센터 강당에서 개최한 ‘2023 경기여성평화포럼’에서는 경기 여성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두루 참석해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토로하는 한편,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교육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기도의 역할을 주문했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도내 여성단체 협의체인 경기여성네트워크와 함께 마련한 이번 포럼은 전쟁예방을 위한 경기지역 여성평화 활동가들과 단체들의 성과들을 살펴보는 자리였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이에 따라 남과 북이 군비경쟁 등을 통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잇따라 제기됐다. 2년 가까이 지속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최근 발생해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한반도 전쟁의 불길한 전조로 파악했다.
기조 강연에 나선 이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와 악영향들을 두루 설파하며 평화를 견인하는 경기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주의 평화담론과 경기지역 평화과제’를 주제로 온라인 기조강연에 나선 미국의 여성평화 활동가이자 학자인 마리 베리 미국 덴버대 교수는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했다고 전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학대해 이혼에 이르고, 할머니가 새로운 배우자를 만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 역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PTSD를 겪었다며 ‘마리 베리’란 자신의 이름은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인종 청소와 함께 국가차원의 조직적인 성폭행이 자행된 르완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고통 받은 여성 260명을 인터뷰한 경험을 들려주며 전쟁의 잔혹함을 알렸다.
그는 “전쟁은 한반도 사람들에게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목격한 전쟁 때문에 고통 받은 내 할머니와 아버지처럼 전쟁은 수많은 미국인에게도 피해를 끼쳐왔다”며 경기 여성계가 전쟁을 막기 위한 전략을 짜고 교육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장관을 지낸 정현백 전 장관은 ‘정전70년, 여성이 만들어가야할 평화과제’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끔찍함에 최근 많은 불안감을 느낀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평화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굴종적 한산함은 평화가 아니다'라며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그동안 한반도에서는 적대적 공전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관계가 훼손됐다”며 “(이전까지)남북은 서로 적대시하되 충돌까지는 가지 않는 장치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북한 정권을 소멸시키겠다고 하면서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확대하고, 북한도 덩달아 공격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기간 비무장지대 국지도발 횟수 228회, 박근혜 정부 108회, 문재인 정부 5회였다”며 “전쟁은 우발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중앙정부 정권교체 후 경기도가 지자체 중 사실상 유일하게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경기도와 경기여성가족재단, 경기 여성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토론에 나선 경기평화교육센터 양훈도 이사는 “과거에는 활발하게 평화교육을 실시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평화’자만 들어가면 난색을 표한다”며 "대신 그 자리를 ‘안보’란 이름이 붙은 단체가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평화를 권리로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그럴 시점이 됐다. 학교에서의 평화교육이 중요하다. 현재는 울퉁불퉁한 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 같다. 어려운 시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지고,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정아 경기여성단체연합 대표는 “경기도는 다른 지자체와 지리적으로 접경지대라는 이유에서라도 계속 평화를 얘기해야 한다. 계속 테이블에 올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김엘리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필리핀, 콜롬비아에서 전쟁 후 여성들이 평화 구축 과정에 참여한 예를 들면서 ‘평화조율사’로서의 여성의 위치를 부각 시켰다. 그는 “국가 이익을 떠나서 초국가적으로 움직이는 여성들이 평화의 초석이 되고 있다. 전쟁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지고 준비된다. 군사적 해결이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여성, 시민사회가 그런 주장(교육)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평화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재편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주진 평화갈등연구소장은 “한국 사회의 평화교육은 일회성, 이벤트성이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견학 등이 주다. 그런 것들로는 사람이 변화하지 않는다”며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평화교육 기회의 부재”라고 비판했다.
이슬기 서울대 통일교육연구센터 연구원도 “토론하지 않으면 스스로 이해하거나 분석력을 갖지 못한다. 가치와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평화교육애 이론교육을 포함시켜야 한다. 어린이가 됐든 어른이 됐든 토론을 해야 한다. 다양한 내용을 포함해야 우리가 직면한 문제, 한국사회와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순 경기도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는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경기여성평화포럼은 경기도 양성평등기본계획 세부추진 과제로 포함되는 의미 있는 행사로, 지속적으로 여성과 인권 관점의 경기도 평화의제를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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