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만년작들, 슬픔을 넘어 담담하게 연주했죠”
쇼팽 마지막 4년 작품 새 음반 내
피아니스트 김정원(48)은 한때 ‘클래식 아이돌’이었다. 계기는 2000년 쇼팽 국제 피아노콩쿠르였다. 한국인 최초로 3차 본선에 진출하며 주목받았다. 이듬해 국내 데뷔 무대에 꽁지 머리로 올라 화제를 낳았다. 이후 공연 때마다 팬들을 몰고 다녔다. 요즘은 클래식 공연 기획자, 해설자에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그가 쇼팽의 마지막 작품들을 음반으로 내놓았다.
지난 17일 유니버설뮤직코리아를 통해 발매한 앨범은 ‘라스트 쇼팽’. 39살에 요절한 쇼팽(1810~1849)이 마지막 4년 동안 남긴 녹턴, 왈츠, 마주르카, 폴로네즈 등 13곡을 담았다. 광주(22일)와 서울(25일), 대구(28일), 청주(29일), 부산(30일)에서 공연도 한다.
“쇼팽을 의도적으로 피했어요. 20대까지 그토록 치열하게 사랑한 쇼팽을 미지근한 감정으로 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는 18일 서울 통의동 스튜디오 오디오가이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쇼팽을 멀리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본디 ‘쇼팽 스페셜리스트’였다. 쇼팽에 빠져 피아니스트가 됐고, 데뷔 음반도 쇼팽이었다. 스케르초 전곡, 연습곡 전곡 등 쇼팽 앨범을 잇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쇼팽을 떠나보냈고, 독일 낭만주의에 빠져들면서 쇼팽과 멀어졌다. 공연에서도 쇼팽을 가능하면 피하려 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란 타이틀을 벗기 위해서였다”고 김정원은 떠올렸다.
그에게 쇼팽의 곡들로 채운 앨범은 2005년 ‘연습곡 전집’ 이후 18년 만이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가 다시 쇼팽으로 돌아온 이유가 뭘까. “40대 후반인 저와 마지막 시절의 쇼팽이 비슷한 감정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 같더군요. 적당하게 회의적이고, 쓸쓸하기도 한데, 많은 것에 너그러워지고 포용하게 된 부분도 있고요.”
그는 “연인을 잃고 건강을 잃고 조국 폴란드의 독립도 이뤄지지 않은 마지막 시기였으니 쇼팽은 아프고 외로웠을 것”이라며 “쇼팽 내면의 아픔을 화장하거나 향수 뿌리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연주한 쇼팽을 “슬픔을 넘어 담담하고, 절절하기보다 건조한 쇼팽”이라고 표현했다. 또 “쇼팽의 마지막 작품들은 감정 전달이 직접적이지 않은데 제겐 그게 더 아프게 느껴졌다”며 “슬프다고 징징거리지 않고, 안 슬픈 척 연주하고 싶었다”고 했다.
쇼팽이 죽기 직전에 작곡한 최후의 작품인 폴란드 민속 춤곡 바단조 마주르카(op.68-40)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드러냈다. “쇼팽이 죽음을 예견하고 쓴 게 아닐까 싶어요. 비장하다기보다는 손을 놓고 떠나보내는 이별의 느낌이에요.” 그는 “마주르카는 폴란드 서민들의 춤곡인데, 조국 폴란드에 대한 쇼팽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앨범에 수록한 첫 곡인 뱃노래(바르카롤 op.60)는 데뷔 앨범에도 있는 곡이다.
그는 “첫 앨범 연주와 많이 달라져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며 “그때는 패기가 있었는데 이번엔 허심탄회한 감정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다”고 했다. 이 앨범엔 장르별로 쇼팽이 마지막 시기에 쓴 작품들을 고루 만날 수 있다.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작품들은 아닌데 마음과 머리가 힘든 곡들이에요.” 그는 “후배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수록곡들을 보고 ‘프로그램만 봐도 피곤하다’고 하던데, 관객에겐 피곤함이 아니라 힐링을 드리겠다”며 웃었다.
연주자 외길만 걸은 게 아니다. 베이스 연광철과 작곡가 김택수의 음반을 제작한 기획자였고, 공연 해설자였고, 네이버 클래식 프로그램인 ‘김정원의 브이(V)살롱 콘서트’ 진행자로 활약했다. 지난 21년엔 데뷔 20년을 기념해 음악회도 열었다.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당신에게’(CBS FM) 진행자이기도 하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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