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실패의 자랑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소득 수준이 대단히 높은 것도 아니고,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닌데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 에릭 와이너의 책 <행복의 지도>는 아이슬란드에서 찾은 행복의 이유로 실패에 관대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에는 유독 예술가와 작가가 많다고 한다. 이들에게 작가로 성공했는지 아닌지, 책을 출판한 적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책에서 아이슬란드인은 말한다. “우리는 누구보다 착하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들이 실패한 건 냉혹하지 못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실패’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학력·직업·자산뿐 아니라 외모까지 모든 게 완벽해야 하는 한국 사회는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라고 강요한다. 패자부활이 어려운 사회에서 청년들의 삶은 불행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우울증 환자는 100만명이 넘었다. 그중 20·30대 환자가 30여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 실패를 들어준다면 큰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나라 안팎에서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200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페일콘’은 벤처 사업가들이 모여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행사다. 핀란드에서는 매년 10월13일 ‘실패의 날’(Day of Failure) 행사가 열린다. 국내에서는 행정안전부가 2018년 ‘실패박람회’를 처음 개최한 후 지자체들과 매년 박람회를 열고 있다. 대학에서도 실패의 과정을 나누는 ‘실패 자랑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은 오는 23일부터 내달 3일까지를 ‘실패 주간’으로 지정하고 학생들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사진전과 강연 등을 한다고 19일 밝혔다. 한때 학생들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경쟁’의 상징이었던 카이스트에서 열리는 행사여서 더 눈길이 간다.
이런 노력들은 꽤나 유효해 보인다.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겐 절실했던 한마디 아닌가. 실패해도 괜찮아. 하고 싶은 걸 해봐. 아무도 실패를 비난하기는커녕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회라니, 말만 들어도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 같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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