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미래] 기간제법을 폐지하자
노동시장 관련 제도 개편 필요
기간제한 없는 계약직 가능 땐
기업, 고용확대 주저 이유 없어
노동력은 상품이다. 투자된 시간과 노력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고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고도성장기 우리 사회에는 적절한 인적자원과 이의 필요가 동시에 존재했다. 양질의 공교육 시스템은 개인의 노력과 투자가 인적자본으로 전환되는 플랫폼이었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는 노동력 수요를 확대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계층상승이 가능했으며, 그 시스템의 효과로 수십 개의 대기업이 만들어졌고, 선진국에 진입했다. 공고와 상고를 졸업한 노동력이 자동차 공장과 은행 일자리를 채웠고, 대졸자들은 기업의 연구개발과 기획을 담당했다.
1987년 민주화와 노동 투쟁 이전 생산직 노동은 ‘공돌이’와 ‘공순이’로 상징됐다. 임금은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 관리했다. 저임금을 통한 물가 통제는 낮은 비용으로 질 좋은 제품의 수출을 가능하게 한 동력이었지만 기업의 임금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각종 수당이 임금명세서를 채웠고, 잔업과 특근은 임금을 보충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결국 장시간 노동이 만성화되었다. 소정근로시간에 해야 할 노동은 잔업과 특근으로 넘겨졌고, 가산수당이 본봉 수준에 달했다. 평일잔업, 휴일특근, 야간근로에 따른 중복할증 임금이 350%에 달하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공돌이들이 대기업 노동계급으로 형성된 계기는 1987년이었으며 핵심은 노동법과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은 복잡한 임금체계를 임금인상의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노동법은 대기업 인사관리의 하방경직성을 초래했다.
노동법과 근로계약이 최소 근로조건을 규율하지만 노동력에 대한 배타적 관리 및 처분권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는 생산성을 유인하고 노동력 가치를 극대화할 책임을 갖는다.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 낮은 생산성, 이직, 노동조합 조직화 등은 모두 사용자 책임이다. 따라서 인사관리는 기업의 성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효율적 인적자원관리를 위해 사용자가 활용할 방법은 다양하다. 성과에 기반해 보상 수준을 차등하는 것, 역량에 따라 승진 기회를 부여하는 것, 인력의 배치를 조정하는 것, 고용계약을 해지하는 것 등이 대표적 방법일 텐데 우리의 경우 이 모든 것이 쉽지 않다.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전체 근로자 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고용계약을 임의로 해지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다.
인사관리가 어렵다 보니 늘어나는 것이 비정규직이다. 지난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도 불구하고 기간제를 포함한 한시근로자 비중은 꾸준하게 증가했으며, 분쟁 대상인 사내도급도 줄어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근로자성을 회피하기 위한 특고의 숫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종의 풍선효과인 셈이다. 정책으로 강제해도 소위 비정규직으로 불리는 모든 고용 형태가 전부 ‘정규직’이 될 수 없다. 노동력의 활용과 관련된 기업의 인사관리에 제도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한 정규직 전환은 더욱 어렵다.
보다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70년 동안 노동시장을 지탱해 온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17년간 노동시장을 규율해 온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보호법’(기간제법)의 전면 혁신이 필요하다. 첫 단추로 기간제법의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 2년의 사용기간 제한으로 일자리를 떠나야 하는 불합리에 대한 지적에 노사 모두 공감한다. 법 폐지에 따른 계약직 고용 확산을 우려하지만 일 잘하는 노동자를 내보낼 사용자는 없다. 기간 제한 없는 ‘계약직’ 근로계약이 가능하다면 기업은 고용 확대에 주저할 이유가 없으며, 하방경직성 때문에 억제된 일자리 공급이 가능해질 것이다. 일자리 확대와 고용계약 활성화로 외부노동시장이 확장되어 직무에 기반한 임금체계로의 전환이 촉진될 것이며 직무 가치에 상응한 임금상승을 유인할 가능성도 높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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