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다 보면 재난을 겪을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319일을 기록한 김초롱씨
지난해 10월29일 밤, 김초롱씨(33)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골목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김씨는 당사자로서 사회적 참사가 개인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지켜봤고, 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목격했다. ‘생존자’라는 무게감에 짓눌릴 때마다 김씨는 고통 속에서 경험한 삶의 변화를 기록했다.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김씨가 참사 이후 319일간 남겨온 기록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참사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통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보통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열흘 앞둔 19일 서울 마포구에서 가진 출판간담회에서 김씨는 기록을 통해 알리고 싶은 바를 이같이 설명했다.
책은 김씨의 일상이 무너진 과정을 담고 있다. 김씨는 “어디까지 솔직하게 써야 하는지가 가장 큰 집필 기준이었다”며 “‘일상이 무너졌다’는 간단한 표현에 다 담기지 않는 실제 모습도 적나라하게 썼다”고 했다.
참사 당일 인파에 휩쓸려 숨이 막히고 발이 동동 뜨는 경험을 한 김씨는 그 자신도 트라우마의 피해자였다. 간신히 골목을 벗어난 그는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찾아왔다고 했다. 김씨는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저 사람 삶의 일부를 가져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사과를 하고 싶었다”며 “동시에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대다수가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참사 이후 누구도 사과하는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해 김씨는 “한국 사회는 사과하는 것이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과를 하는 주체는 필요하다”며 “지금 젊은 친구들에게 ‘너희가 잘못한 게 없다’라고 말하는 분이 단 한 분도 없었다. 결국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사회가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혐오로 단순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참사의 본질을 파헤치기보다 혐오하는 방식으로 모든 사건을 처리한다고 느꼈다”며 “고통에 대한 공감이 전혀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참사 배경과 원인을 한국의 사회문화적 면에서 봐야 한다”며 “우리 청년 세대를 이해하면 참사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제 또래 청년뿐 아니라 부모님 세대들도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아픔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힘들고 아프다 해서 자꾸 외면하고 미루면 아예 없던 일이 돼버린다. 아프지만 자꾸 봐야 새 살도 나고 극복하듯 쉬쉬할수록 우리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이 돌아간다”며 “안전하게 축제를 기획해 ‘올해 더 오세요’라고 하면 훨씬 빠른 속도로 극복될 것”이라고 했다.
책 끝에는 참사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서병우씨와 유가족 이현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김씨는 이 인터뷰를 게재한 이유에 대해 “참사 당사자가 느끼는 아픔과 유가족이 느끼는 아픔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며 “유족의 힘듦과 문제의식을 잘 전달하는 메신저가 있다면 사회가 귀를 기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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