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1200만원 뜯기고 최저시급 받는 조선소 이주노동자들

최나실 2023. 10. 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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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입국 전엔 270만 원, 한국 오니 190만 원
'취업사기' 횡행한데 정부에선 나 몰라라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도장 작업을 하고 있다. 울산 산재추방운동연합 제공

"에이전트(인력송출업체)에 스리랑카 돈으로 300만 루피(약 1,250만 원) 줬는데, 그거 어디에 쓰는지는 설명 없어요. 돈 없으니까 집 담보해서 은행 대출받았어요. 다른 친구들도 집도 팔고, 차도 팔고, 오토바이 팔고 (한국) 왔어요."

"(한국) 오기 전 월급 270만 원으로 계약했지만 한국에서 최저시급 9,620원으로 다시 계약서를 썼어요.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미얀마 돌아가야 한다, 그런 얘기했어요. 어쩔 수 없이 서명했어요."

정부가 조선업계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주노동자 영입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입국 대가로 1,000만 원 안팎의 고액 수수료를 내고 당초 본국에서 쓴 계약서와 달리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관리·감독 주체여야 할 법무부와 고용노동부가 책임을 방기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19일 금속노조·정의당 주최로 국회에서 '인신매매 취업사기 강제노동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 보고회'가 열렸다. 금속노조 제공

금속노조·정의당은 19일 오후 국회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개최했다. 금속노조는 올해 3~10월 조선업 종사 이주노동자 410명 설문조사와 22명 심층면접을 통해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한국 입국 과정에서 고액의 송출 비용(브로커 수수료) 납부 △본국과 한국 간 이중계약을 통한 임금 착취 △사업장 변경·이동 제한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2016년 수주 절벽이 찾아오자 조선사들은 대량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만 명에 달하던 조선업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일터를 떠났다. 2021년부터 업황 회복세를 맞았으나 저임금·고위험·고강도 노동에 국내 노동자들이 조선소 복귀를 외면하자, 인력난을 호소하는 업계를 달래기 위해 정부는 비자 간소화 등을 통해 대대적인 '외국 인력 수혈'에 나섰다.

그 결과 조선업계의 이주노동자 수(E7-3·E9·H2 비자)는 2021년 3,570명에서 올해 8월 기준 1만3,258명으로3년 만에 4배 늘었다. 특히 법무부가 관할하는 전문인력초청비자(E7) 노동자는 2021년 264명에서 올해 5,670명으로 21배 폭증했다.

조선소 C업체에서 E7 비자 도장공으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올해 8월 급여명세서.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9,620원을 적용받는 것으로 나와 있다. 원래 법무부 규정에 따르면, E7 비자 이주노동자는 기본급으로 국민총소득의 70~80%를 받아야 한다. 2022년 기준인 통상임금 270만 원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본래 시간당 1만2,919원을 받아야 한다. 금속노조 제공

문제는 정부가 인력 도입에만 관심을 쏟고, 입국 과정이나 입국 후 노동실태 관리·감독은 사실상 방치한다는 점이다. 법무부 규정에 따르면 E7-3 비자 발급 시, 외국인력 이용 업체는 이주노동자 기본급을 전년도 국민총소득(GNI)의 70~80% 수준으로 정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2021년 GNI 적용)으로 월 270만 원이다. 그런데 실상은 본국에서 규정에 맞게 계약서를 써놓고, 한국에 와서 최저임금 수준으로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는 '이중계약 취업사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윤용진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이주노동자들도 계약서 내용이 달라진 것을 알지만, 못 쓴다고 하면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나오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법무부 규정이 공개가 안 돼 있어서 (업체 위반 시) 벌칙 규정이 있는지, 신고를 어디에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고용부가 비자 발급을 관장하는 고용허가제(E9·H2)와 달리, E7 비자는 법무부와 산업부에서 위탁한 민간 사용자단체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민간에서 담당하다 보니 중간 브로커에 의한 수수료 착취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노조는 지적했다. 심층면접을 진행한 이주노동자들에 따르면, 송출업체에 최소 800만 원(스리랑카)에서 최대 1,600만 원(베트남)의 수수료를 납부해야 했다고 한다. 출신 국가 임금 수준을 고려할 때 수년 치 연봉에 맞먹는 돈이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여한 김그루 연구위원은 "정부가 직접 관장하는 고용허가제처럼 조선업 이주노동자 송출·송입에도 공공성 확보가 필요하며, 근로감독 강화와 위반 시 적극적 제재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주(내국인)와 이주(외국인)를 가리지 않고 하청노동자 임금 인상과 노동여건 개선이 필요하며,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서 입을 막아놓고 일만 시키는 지금의 정책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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