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국립대병원 ‘서울 빅5병원’처럼 키운다…의대 파격 증원 한 발 물러서
지역 인재 우선 선발...비율은 비공개
비수도권 수련병원에 전공의 50% 의무 배정
尹 “우리는 국민을 위한 정치 해야”
정부가 붕괴하는 지방 의료를 되살리기 위해 전국 국립대 병원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 서울 대형 민간병원 수준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지방의 환자들이 서울로 올라오지 않더라도 안심하고 인근 국립대 병원에서 중증·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최근 몇 주 동안 세간을 달군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구체적 일정과 규모는 발표하지 않았다. 의사 단체의 반발이 큰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사회적 합의나 세심한 정책 설계 없이 의대 증원을 발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9일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의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 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앞서 정부가 지역·필수의료를 확충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최대 1000명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날 발표에선 의대 증원 규모와 확대 방식 연도별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발표의 핵심은 국립대 병원의 역할 강화였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행법상 국립대 병원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원을 함부로 늘릴 수 없다. 직원에게 줄 수 있는 급여는 공공기관 총액 인건비에 묶여 있다. 민간·사립대병원만큼 보수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지방국립애의 우수한 의료진이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흔했다. 작년 기준 국립대 병원 의사 2년 내 퇴사율은 58.7%에 달했다.
정부는 현재 국립대 병원에 적용되는 규제를 풀어 이른바 빅5라 불리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수준으로 키우는 구상을 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이 우수한 의료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국립대 병원 관리 부처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바꿔 의료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한다. 복지부는 소관 부처를 변경해서 노후화된 중증 및 응급 진료 시설과 병상 등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금도 준다. 현재 국립대 병원의 진료시설과 장비에 대한 정부 지원 비율은 25% 정도 받고 있는데, 이를 75% 수준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육성한 국립대병원을 ‘지역의료의 컨트롤타워’로서 활용한다는 그림이다.
정부는 컨트롤타워인 국립대 병원과 지역 병·의원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지역 필수 의료 네트워크 시범사업’도 시작한다. 동네 의원 등 1차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은 현재 만성질환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 의료 분야 전반으로 확대한다.
정부는 이날 구체적인 일정이나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의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방침은 재확인했다. 또 의사 수를 늘려도 수도권 피부 미용으로 쏠릴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지역 인재 육성과 지역 필수 의료 수련 방안을 내놨다.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지역에 남아 진료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40%인 의대 지역 인재 전형 비율을 더 확대한다. 이날 정확한 비율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를 80%까지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작년 의협이 진행한 연구 조사를 보면 지방 광역시 소재 의대를 졸업한 의사의 60.1%가 지방에서 근무했다.
또 전공의들이 지역·필수 의료 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비수도권 지역의 수련병원에 전체 전공의 정원의 50%를 의무 배정한다. 필수진료과의 수련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한다. 아울러 공공병원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의사인력뱅크(가칭)’을 설치하고 협력 의사를 확보하는 등 재취업도 지원한다.
응급 중증 환자를 다루는 필수 의료 의사가 의료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민·형사상 부담도 줄여준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분만 의료 사고에 대한 보상을 국가가 전부 책임진다. 복지부는 이 같은 혁신전략 추진을 위해 국립대 병원 등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구체적 실행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의대 증원과 관련해 ‘합의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정부가 이날 의대 증원 규모와 구체적인 일정, 지역 인재 선발과 관련해 정확한 비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주재한 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는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며 “속도감 있게 나아가면서 관련 분야에 있는 분들과 소통해야 국민에게 유리한 방안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는 의대 정원 확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급하게 마련한 정책이 아니라는 취지를 에둘러 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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