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응징 몰두하다 대량 인명피해 …'9·11 실수' 일깨운 바이든
바이든 "분노 잠식돼선 안돼"
무리한 충돌 자제 거듭 언급
이, 경고 불구 지상전 준비
지지율 급락 최저치에 근접
바이든 20일 대국민 연설
"美의 반복된 실수 두렵다"
국무부 군사지원 국장 사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찾아가 전폭적인 안보 지원과 강력한 연대를 재확인해주면서도 '미국이 9·11 테러에 대응한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지구 공격이 임박한 시점에서 과잉 군사작전을 경계하는 메시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 방문 일정을 소화한 뒤 현지 연설에서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에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을 두고 '이스라엘 9·11'이라고 정의하면서 "분노를 느끼더라도 분노에 잠식되어서는 안 된다"며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정의를 추구했지만 실수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 중에 하는 결정은 신중을 기해야 하고 반드시 비용이 수반된다"면서 팔레스타인 주민 대다수는 하마스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참전할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결코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구상을 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2개 전쟁을 지원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9·11테러 이후 미국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시인하면서 이스라엘에 완곡하게 확전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과거 미국이 9·11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 전면적인 지상 작전을 수행하며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를 초래했고, 미군도 7000명을 잃는 피해를 봤다. 미국 정부가 지출한 자금만 2조2000억달러(약 3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라크전에서는 민간인 20만명과 미군 4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테러단체 알카에다 일부를 제거했지만, 혼란 속에 다른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 세력이 확대되도록 하는 등 단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에 전폭적인 방위 지원을 약속하며 사실상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을 향한 전면 공격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날 이스라엘에서 워싱턴DC로 돌아오는 에어포스원 안에서 "대안에 관해 이스라엘과 긴 대화가 있었고, (미국 의회에) 이스라엘 방위를 위한 전례 없는 지원 패키지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19일 오후 8시(현지시간)로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에도 관심이 쏠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1000억달러에 달하는 방위 지원 예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의회를 압박할 예정이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해 "갈 곳 없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텔아비브 방문 때 매우 솔직한 대화로 가자지구에 대한 긴급 지원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한 뒤 이집트 북부와 가자지구를 잇는 국경지대 라파를 통해 트럭 20대 분량의 지원 물품 통과를 허락했다. 구호 물품은 이르면 20일부터 가자지구에 전달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방국가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올라프 숄프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이 차례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확전 자제를 촉구할 방침이다. 수낵 총리는 19일 이른 아침 텔아비브에 도착해 이스라엘 설득에 들어갔다.
다만 이스라엘은 대규모 가자지구 지상전을 재다짐하고 나섰다. 이날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육군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전쟁이 끝나면 더 이상 가자지구에 하마스는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자지구 영토도 줄어들 것"이라며 전면전을 예고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도 "우리는 민간인을 위협하고 여성을 강간하고 아기를 납치하는 학살을 저지르는 하마스와 국경을 맞대고 살 수 없다"며 "전쟁의 목표는 하마스의 테러 주권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군사 지원을 두고 반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량의 무기 지원이 대거 인명 피해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해외 동맹국 군사원조를 담당하는 조시 폴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국장이 사임했다고 보도했다.
폴 국장은 사임 메시지에서 "(이스라엘에 군사 지원을 하는 것은) 도덕적 타협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면서도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두렵고, 내가 더 이상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보복 공격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에게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재임 이후 최저치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18일 CNBC가 이달 11~15일 미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37%였다.
[워싱턴 강계만 특파원 / 서울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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