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김기현 책임론'을 계속 말하는 이유
[해설]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 조선 '김기현 책임론' '쇄신안' '대통령실·여당 수직 관계' 비판
셋다 바뀌지 않자, 총선 전 김기현 체제 붕괴 가능성 거론하며 과거 국정문제까지 꺼내 비판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21대 총선(2020년 4월15일)을 반년 앞둔 2019년 11월18일, 조선일보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을 인터뷰해 <“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민폐…황교안·나경원 다 물러나자”>란 기사를 정치면에 실었다. 부산 지역구 3선 김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당 지도부는 물론 현역의원 전원 불출마와 당 해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좀비 한국당” “존재가 민폐” “다 물러나자” 틀린 말 없다>에서 “김 의원 지적처럼 한국당은 친박·비박이 갈라져 싸우다 선거를 망치고도 못난 내부 갈등을 계속했다”며 “한국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북한 김정은과 같은 62%라는 최근 여론조사도 있었다”고 한국당을 '좀비'에 비유한 김 의원 주장에 공감했다.
김 의원 인터뷰에 대해 당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에서 “총선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비공개 회의에선 지도부 총사퇴나 불출마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다. 보수언론 보도를 보면 영남권 친박계 의원들은 김 의원 주장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당이 어려울수록 세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대 총선에서 한국당은 100석을 간신히 넘기며 183석(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을 얻은 당시 범여권에 패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국당이 국민이힘이라는 여당이 됐다는 것을 빼면 비슷한 양상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당 지도부 책임론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60% 수준이다. 황교안 전 대표처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총선에서 지면 정계은퇴로 책임지겠다”며 사퇴론을 일축했고, 이만희 사무총장을 비롯해 임명직 인선을 '친윤'으로 다시 꾸렸다.
황교안 체제가 떠올랐을까. 조선일보가 지난 11일 보궐선거 이후 여권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고 있다.
선거 결과를 처음 전하는 지난 12일 조선일보는 <여당의 완패 민심의 경고>란 1면 기사에서 “여당에선 '수도권 위기론'이 재점화하며 여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전망”이라며 “여당 지도부에선 총선 준비단을 조기 구성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전문가들 의견이라며 “김기현 지도부에 대해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김기현 지도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의사를 표현한 선거” 등 의견을 전했다.
이는 김기현 대표 사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사퇴론을 일축하고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황교안 체제 길에 들어섰다.
조선일보의 두 번째 주문은 여당 지도부가 쇄신안을 내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4일자 <선거 지고도 조용한 여당>이란 1면 기사 부제가 “지도부는 쇄신 대책 안 내놓고 의원들은 공천 눈치보며 침묵”이다. 같은 날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의 기자수첩 <안철수와 이준석만 시끄럽네>를 보면 여당이 선거 완패에도 긴장감 없이 낯뜨거운 설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가 감정적 언어로 싸웠기 때문이다. 이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인 <선거 참패한 당이 쇄신안 내놓지 못한 채 집안싸움 중>이 여당에 대한 평가를 요약해준다.
하지만 김 대표는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조선일보는 이를 재차 비판했다. 지난 17일자 사설 <'혹시' 했지만 '역시'로 가는 국민의힘>을 보면 김 대표가 선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철규 전 사무총장 후임으로 이만희 의원을 임명한 것에 대해 “김 대표(울산 남구을)와 윤재옥 원내대표(대구 달서을)에 이어 당의 3대 요직을 모두 다시 영남 출신이 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도로영남당'으로 이는 쇄신이 아니라 후퇴에 가깝다.
조선일보는 근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이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다. 수많은 기사와 칼럼에서 윤 정부 국정 방향은 큰 문제가 없지만 윤 대통령의 태도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여당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선거 결과를 알린 지난 12일 조선일보는 관련 기사에서 대통령실과 여당의 수직적 관계로는 내년 총선 승리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다음날인 13일 사설에서도 “대통령실과 여당이 지나친 상하관계가 되면 꼭 필요한 정치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인 모습은 수도권 민심에 민감하지 않은 '김기현 체제 시즌2', 대통령실과 여당의 수직적 구조 속에서 친윤 체제 공고화였다. 최근 언론에서 다루지 않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뿐 아니라 의원들의 한계도 크다. '황교안 체제'로 치른 총선에서 당선된 인사들이기 때문에 애초 개혁적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비윤계 인사들이 당 혁신을 말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조선일보 19일자 사설을 보면 김 대표가 보기에 당에 마땅한 인물이 없어 '도로영남당'으로 회귀한 것을 알 수 있다. 김 대표 측은 영남 사무총장을 기용한 이유에 “4년 전 총선 패배로 수도권 현역 의원이 17명뿐인데 재선 이상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물론 '마땅한 인물'은 '친윤' 중에서 마땅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는 지난 18일 <“황당하게, 김기현 대표 쫓겨나겠네”>라는 기자수첩에서 조수진 최고위원이 한 당직자와 '김기현 2기' 인사안에 관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인용했다. 인사 초안을 본 담당자는 친윤 일색 인사안을 보고 “황당하네. 김기현 대표 쫓겨나겠네ㅜㅜ”, “후임 당직은 시기가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데, 서두를 필요 없는데. 연기하자고 해요.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고”라고 반응했는데 이 대화가 보도됐다.
조선일보 기자는 기자수첩에서 김 대표가 “총선에서 지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하자 “불출마 선언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당연한 얘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 것을 거론한 뒤 “과연 '김기현 체제'가 얼마나 더 갈지 지켜보자는 게 냉혹한 민심”이라며 “웅크렸던 민심의 호랑이가 총선 전에도 언제든 김 대표를 덮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여의도에선 김 대표가 늦어도 연말에는 교체될 것이란 전망이 파다한데 조선일보도 김기현 체제로 총선을 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19일 조선일보는 비판 강도를 더 높였다. 윤석열 정부의 그동안 국정 운영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날 사설 <윤 대통령 “국민이 늘 옳다”, 인사도 그렇게 하고 있나>에서 “근래에 장관급 인사는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인선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인사 문제를 지적했다.
같은 날 논설주간의 칼럼 <이럴 거면 뭐 하러 용산 이전 고집했나>에서 윤 대통령의 첫 작품인 대통령실 용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제왕적 대통령 안 하려 청와대를 탈출하더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제왕적 국정 운영을 하는 역설을 목격 중”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현 정부에 가장 우호적이었던 언론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권에 빨간불이 켜진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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