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또 여가부 엑시트용 장관만 찾고 있나
[아침햇발]
황보연ㅣ논설위원
다 같이 문제를 한번 풀어보자. ㄱ사에서 부서 파트장으로 일해온 ㄴ씨가 출산휴가와 1년간 육아휴직을 쓴 뒤 회사에 복직했다. 하지만 그가 맡아온 파트는 다른 부서에 통폐합됐고 파트장 보직을 달고 일해온 그는 일반 직원으로 강등됐다. 승진 대상군에도 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취업규칙과 승진규정에는 육아휴직자가 임금·승진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남성 육아휴직자도 똑같은 불이익을 받는다. ㄴ씨는 합리적 이유 없이 성차별을 받은 것인가, 아닌가?
문제가 다소 어렵게 보이더라도 곤란해할 필요는 없다. 이런 권리분쟁을 조정·판정하는 준사법적 기관이 있다. 지난달 중앙노동위원회는 ㄱ사 대표에게 승진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성차별인 만큼 시정하라고 주문했다. 동일한 규정이 적용되더라도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휴직을 쓰는 비중이 2.7배 이상(최근 5년간 통계) 높으니 실질적으로는 차별이라는 논지였다. 그런데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초심 판정을 낸 지방노동위에선 성차별이 아니라는 정반대의 판단이 나왔었다. 육아휴직자 평균 승진 소요기간이 남성 6.3년, 여성 6.2년으로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ㄴ씨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구조적 성차별’이 얼마나 공고히 자리잡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직원 1천명을 둔 대기업(ㄱ사)에서 버젓이 육아휴직자를 차별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지노위가 차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점, 이번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2022년 5월 도입)에 따른 시정명령이 0건이었다는 점이 모두 그렇다.
이번에는 응용 문제를 풀어보자. 구조적 성차별이 없어졌기 때문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건재한가, 아닌가?
이른바 ‘김행랑(김행+줄행랑) 사태’는 총체적 인사 참사로 온 국민의 뇌리에 박혔는데, ‘여가부 폐지’ 공약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대통령 의중을 읽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지난 2월 정부조직법 개편에서 야당과 시민사회 반발로 부처 폐지가 불발됐지만 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김행은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마자,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하겠다” “(구조적 성차별은) 제가 젊었을 때는 분명히 존재했다”는 말로 여가부 폐지론을 이어가려 했다. 그는 주식파킹·배임 의혹 등으로 지난 12일 지명 한달 만에 사퇴했다.
김행이 물러났다고 안도할 일도 아니다. 또 다른 김행과 김현숙이 계속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잼버리 파행으로 사의를 밝힌 김현숙 장관에게 부여된 임무도 처음부터 ‘해체 로드맵’을 짜라는 것이었다. 시한부 부처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이는 대통령이 성평등 정책을 중요 국가 의제로 삼고 있지 않다는 강력한 신호이며, 그것이 미치는 파장은 작지 않다. 실제로 윤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정책과 조직 명칭 등에서 ‘여성 지우기’가 이어져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와 유리천장 지수가 해마다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가부 본연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인사를 해야 한다.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위키트리’를 운영한 김행의 경력은 이번 인사 검증 단계에서 거론조차 안 됐을 것이다. 또다시 엑시트용 장관을 아무나 지명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윤 대통령이 “여가부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한 말부터 거둬들여야 한다. 애초 20대 남성 유권자의 표심을 얻으려고 내민 공약이 아닌가. 과거 여가부를 없애려다 실패한 이명박 정부가 여가부→여성부→여가부로 조직을 바꾸는 과정에서 소모적 논쟁으로 분란만 키웠던 일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침을 겪지 않도록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에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대입 정책에 불만 있다고 교육부 폐지를 요구하지 않으며, 노사갈등이 노동부 폐지 청원 근거가 되지 않는다. 다른 부처와 달리 여가부가 집중적인 폐지 청원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피해 의식과 여가부가 남성 차별 정책을 주도한다는 인식의 결합이다.”(‘국가 페미니즘, 여성가족부, 여성혐오’, 정사강·홍지아) 여가부를 ‘여성 혐오’의 상징으로 고착화시키려는 움직임에 집권세력이 편승해서야 되겠는가.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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