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교란' 불법 공매도 …"10배, 100배 징벌적 과징금 필요"
과징금·제재건수 가파른 증가
금융당국 인식보다 훨씬 심각
개인투자자 비중은 1%에 그쳐
기울어진 운동장 개선 목소리
'깜깜이 공매도' 문제 꼽히지만
실시간 적발은 사실상 힘들어
금융당국이 불법 공매도와의 전쟁에 나선 것은 장기간 고의적으로 자행된 불법 공매도가 수위를 넘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BNP파리바와 HSBC의 불법 공매도 적발을 계기로 외국인의 무차입 공매도를 막기 위한 규제 필요성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다른 외국계 투자은행에서도 이와 유사한 행위를 한 것을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한국은 시장이 완전히 자유화돼 있어 자본을 현금화하기 쉬운 터라 외국인의 현금자동인출기(ATM)란 비판이 많았다.
공매도가 자본시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이 불공정한 환경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은 당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올해 국정감사 때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90일 이상 공매도 목적으로 주식을 빌린 곳이 전체 기관투자자(85곳) 중 72곳(85%)에 달했다. 대차 종목은 공매도가 허용된 350개 전 종목이었다. 지난 11일 국감에서 당국 예측을 뛰어넘는 이 수치가 공개되자,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의원들도 놀랐다. 무기한 공매도는 주가 하락, 불법 공매도, 시세조종으로 악용될 수 있어서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 공매도 제재 건수는 45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있었던 32건보다 훨씬 많았다. 과태료·과징금 규모는 더 가파르게 늘어 올해 1~8월 107억475만원에 달했다. 2020년에는 7억원, 2021년에는 9억원에 불과했고 작년에는 32억원이 부과됐다. 하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실제 지난달 증시 거래대금 중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8%인데 공매도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나 된다. 반면 거래대금 전체에서 약 72%를 차지하는 개인이 공매도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금융당국 입장과는 달리 시장에서는 공매도가 실제 주가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별 종목 주가가 내리는 것은 매도 물량이 많기 때문이지 공매도 탓은 아니지만 서서히 하락할 종목에 공매도가 합쳐지면서 급격하게 빠지는 사례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깜깜이 공매도'는 문제로 꼽힌다. 이번 적발 사례와 같이 외국계 금융사가 2021년부터 불법 공매도를 해도 현 전자시스템상 실시간 포착을 못한다는 이야기다. 시장에서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의 모니터링과 테마 감리는 사후적 수단이며 사전적으로 불법 공매도를 막을 만한 강력한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공매도의 99%가량을 차지하면서 어드밴티지 룰을 적용받아 일방적으로 유리한 외국인과 기관에 문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선 공매도 시 결제 수량 부족 거래와 선매도·후매수 거래를 자체적으로 증권사들이 점검한 결과를 월별로 보고받고 정기 감리를 한다. 여기에서 필터링되지 않는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하기 위해선 불법 공매도가 의심되는 특정 테마를 수시로 선정해 규정 위반 여부를 감리한다.
그러나 무차입 공매도로 인해 시장에 교란이 일어난 후 상황이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은 불법 무차입 공매도에 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공매도 적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다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불공정거래 발생으로 시장을 감시할 때는 계좌에 관한 정보를 증권사에 요구할 수 있지만 모든 거래에 관한 정보를 거래소가 가지고 있고 이를 전산화해 놓은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 법제에는 형벌이든 행정적 제재 처분이든 비위행위와 그 처분 사이에 비례관계가 성립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100만원만큼 책임질 잘못을 했는데, 1000만원을 물게 할 수는 없다는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영미식의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는 측에서는 적발될 확률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상식적으로 걸릴 확률이 10%라고 하면 안 걸릴 확률은 그의 9배인 90%가 되는 것 아니냐"면서 "범죄를 통해서라도 자본시장에서 이익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자본시장에서 불공정행위를 했을 때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재산상의 불이익을 보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제림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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