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적자 축소의 유일한 해법은 ‘부가가치세’

여론독자부 2023. 10. 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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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美부채 33조弗인데 금리는 높아져
빚내 '연방 적자' 피하기 이젠 한계
'재정 구멍' 메우려면 부가세 불가피
모든 미국인에게 협조 요청 나설때
[서울경제]

공화당이 또 한 차례의 진통을 겪는 와중에도 당내 예산 매파들은 미국이 앓고 있는 기저 질환을 재차 지적하고 나섰다. 바로 연방 적자다. 현재 미국의 부채 총액은 33조 달러에 달하고 적자는 국내총생산의 7%를 넘어섰으며 올해 순이자 지급액만도 국방비와 맞먹는 65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거의 한 세대 동안 정책 결정자들은 적자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낮은 이자로 부족한 자금을 쉽사리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잔치는 이미 끝이 났다.

간단한 해법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지만 안타깝게도 양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든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세계의 다른 선진 경제국들처럼 전국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판매세를 도입해야 한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이를 부가가치세(VAT)라고 부른다. 상품을 판매할 때 단 한 차례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생산 단계별로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의회예산처(CBO)에 따르면 5%의 연방 판매세를 도입할 경우 향후 10년간 3조 달러의 추가 세수를 만들어내면서 미국의 재정 구멍을 메꿔준다. 평균적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전체 세수의 20%를 VAT로 충당한다.

그렇다면 부가가치세 이외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다른 옵션은 무엇인가. 공화당이 제시하는 지출 축소안은 농담처럼 들린다. 지출 삭감 불가 대상에 부채 이자 지급액을 합한 액수가 전체 연방 예산의 75%를 차지한다.

민주당의 해법도 공화당만큼은 아니지만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단골 메뉴는 부유층 증세다. 문제는 부유층 증세가 세수에 그다지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극부유층은 이미 불공평할 만큼 과다한 세금을 내고 있다.

민주당은 부가가치세가 역진세에 해당한다며 도입에 반대한다. 그들은 미국의 세제가 대단히 보수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은 선진 경제국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세금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연소득이 4만 5000달러이건 450만 달러이건 누구에게나 동일한 세율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판매세가 아니라 소득세를 통해 세수의 대부분을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택스파운데이션의 대니얼 번은 “우리 시스템이 가장 진보적인 이유는 중간 소득 근로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미국의 최고 세율은 평균임금의 8.5배에 달하는 소득부터 적용되는 데 비해 독일은 평균임금의 3.5배부터 최고 세율이 적용된다.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자. 택스파운데이션에 따르면 미국의 최상위 10%에 속한 고소득자들이 국민 전체 합산소득액의 50%를 가져가는 반면 연방 세수의 74%를 납부한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경우 최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25%를 담당한다. 부유한 국가의 평균치는 32%다. 미국에서는 3억 30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1%인 130만 가구가 전체 소득의 22%를 벌어들이지만 연방세로 그 두 배에 가까운 42%를 지불한다. 게다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세제는 더욱 진보적이 됐다. 미국의 상위 20%에 속한 소득자의 순 세수 기여액은 1980년대 이후 200%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주세와 지방세를 합하면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수익의 50%를 웃돈다. 만약 이들 중 한 명이 런던이나 베를린 혹은 싱가포르로 이주한다면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특히 싱가포르의 최고 세율은 24%에 불과하다.

연방 예산의 대부분은 삭감할 수 없고 전체 소득자의 98%에 대한 세금은 인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 양당의 신조가 된 지 오래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고질적인 적자를 해소하지 못한다. 적자를 줄이려면 세금을 일부 인상하고 지출의 일부를 축소해야 한다. 또 향후 세금 인상의 대상이 과거 수십 년간 신규 세수의 원천 역할을 도맡았던 고소득층으로 단일화돼서는 안 된다. 부유층이 또다시 신규 세수의 원천이 된다면 경제와 정치 제도가 뒤틀리고 서민들은 연방 정부에 제 몫의 투자를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5%의 부가가치세가 다소 역진세의 성격을 띠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수 증대를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일괄적인 사회복지 혜택 축소보다는 덜 역진적이다. 이제 미국은 부가가치세를 채택한 160여 개국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향후 수십 년간 이 나라를 더욱 단단한 재정 기반 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모든 미국인에게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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