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가짜뉴스의 천적은 지식인
대중의 감정과 결합해 괴담화
광우병·천안함때 뼈아픈 경험
지식인들의 제 역할 아쉬워
가짜뉴스가 판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국내에서는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태,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등이 가짜뉴스의 자양분이 됐다.
근래에 발전한 SNS 붐을 타고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지만, 실상 인류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가짜뉴스와 투쟁해왔다.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2세,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 미국 독립의 영웅 벤저민 프랭클린도 수시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유포했다. 가짜뉴스는 역사적으로 떨쳐버릴 수 없는 뿌리 깊은 현상이다."(신디 오티스 전 CIA 분석가·'가짜뉴스의 모든 것')
가짜뉴스는 전쟁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은 승패가 있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구조다. 그래서 전쟁에서는 승리를 위해 진실의 가치가 힘을 잃는다. 정치에 가짜뉴스가 많이 기생하는 것도 선거가 승자 독식이라는 전쟁의 속성을 닮았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건전한 정치 환경에서는 가짜뉴스가 생기더라도 금세 소멸된다.
가짜뉴스가 괴담으로 자라나면 사회에 치명상을 입힌다. 가짜뉴스가 괴담이 되는 필요조건이 있다. 대중의 신념 또는 감정과 결합하는 것이다. 대중의 신념이나 감정은 진실을 외면하려는 성향이 있다. "인간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감정은 판단력을 정지시켜 진실을 기피하게 한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말과 비슷하다."(홍성기 아주대 명예교수)
광우병과 세월호 사태는 대중의 감정이, 천안함과 사드 논쟁은 신념이 가짜뉴스와 결합해 괴담으로 커진 사례다.
가짜뉴스가 괴담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싹이 잘리는 경우도 있다. 지식인들이 제 역할을 할 때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진실과 거짓을 가려 제 목소리를 내주면 가짜뉴스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가짜뉴스가 그랬다. 8월 24일 일본 도쿄전력이 오염수 1차 방류를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전국이 가짜뉴스로 떠들썩했다. 가짜뉴스를 등에 업고 야당 의원들은 장외투쟁에 나섰고, 환경단체들은 전국 각지에서 시위를 벌였다. 언론들도 성향에 따라 제각각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국내외 원자력 전문가들이 나섰다. 이들은 오염수 가짜뉴스에 대해 명백히 사실이 아님을 주장하고 열심히 진실을 알렸다. 현재 일본은 오염수 2차 방류를 진행 중이다. 1차 방류 당시와 비교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하다. 전국 수산시장과 횟집들도 예년과 다름없이 평온하다.
광우병 사태 때는 반대였다. 소위 지식인이라는 학자와 전문가들은 가짜뉴스에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거대 언론과 정치가 손을 잡고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며 가짜뉴스를 괴담으로 급속도로 키워나갔다. 지식인들은 겁을 먹고 입을 다물었다. 4대강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왜곡하거나 외면했다. 사드 사태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이어졌다. 천안함 논쟁 때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판을 쳤다.
지식인 계층이 튼튼해야 사회가 건강하다. 서양 정치의 원류로 꼽히는 플라톤도 지식인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저서 '폴리테이아(국가)'에서 철인정치를 언급했다. 플라톤의 철인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을 가리킨다. 바로 오늘날의 지식인에 해당한다.
펠로폰네소스전쟁 때 태어나 그리스 과두정치 시절에 성장한 플라톤은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상황을 진저리 나게 겪었을 것이다. 가장 존경하는 스승 소크라테스가 일종의 가짜뉴스(모함)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모습까지 목도했으니 가짜뉴스의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절감했다. 그런 플라톤이 이상적인 국가의 통치 계급으로 지식인을 꼽은 것은 설득력이 있다.
[이진명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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