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평양 간 라브로프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을 놓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데이비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이 전화로 설전을 벌였다. 밀리밴드가 양국 관계를 재고하겠다고 하자 라브로프는 "××, 당신이 뭔데 날 가르치려 드나"라며 맞받았다. 영국 언론은 녹취록에 F로 시작된 욕설이 반복 사용됐다고 보도했다. 밀리밴드도 이후 "공격적 언어의 잔인함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는 서방에 대한 라브로프의 강경 입장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워싱턴 노선에 맹종한다며 '미국 앞잡이'라고 비난해왔다.
이런 거침없는 라브로프가 18~19일 북한을 방문했다. 2004년과 2009년 남북한을 동시 방문했고, 2018년에 이어 네 번째다. 라브로프는 28년간(1957~1985년) 소련 외상을 지낸 안드레이 그로미코에 이어 두 번째로 장수하는 러시아 외교 수장이다. 2004년 3월 외무장관에 부임했으니 재임 기간만 19년이 넘는다. 상대한 미 국무장관도 콜린 파월부터 토니 블링컨까지 7명이나 된다. 라브로프는 서방에 줄곧 '아니오'를 외쳐 '미스터 노(Mr. No)'라는 별명을 얻은 그로미코의 판박이라는 평가다.
라브로프는 외교관 양성학교인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므기모) 출신으로 동방학부에서 스리랑카어를 전공해 1972년 첫 발령지가 스리랑카 대사관이었다. 이후 외무부 국제경제국, 국제기구관리국 같은 다자외교 부서에서 근무했다. 1992년 외무차관을 거쳐 2년 만에 유엔 대사로 10년을 일한 뒤 외무장관에 올랐다. 골초인 그가 유엔 근무 때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청사 내 흡연을 금하자 이에 반발해 금연 지정 장소만 골라 담배를 피운 일화는 반골 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자들 질문에는 화도 잘 내고 조롱하기도 한다.
라브로프는 최근 "북한에 대한 제재 선언은 안보리가 했지 우리가 한 게 아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유엔통(通)인 그가 몰라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한반도 안정에 도움 안 되는 그의 방북이 이번이 마지막이길 빈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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