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수행처럼 힘들어도···만족한 손님 보면 쾌감"

김경미 기자 2023. 10. 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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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스시로 日서 '미쉐린' 따낸 문경환 셰프
日 요리만화 빠져 '초밥왕' 꿈꿔
9년 혹독한 셰프 수련 거쳐 개업
스시 본산 日서 3년째 '미쉐린 별'
가게 예약하려면 최소 3개월 필요
"일하기 전 머리 밀고 앞치마 공들여"
문경환 셰프가 초밥을 준비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문경환 셰프가 초밥을 쥐어 보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일하는 날이면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밉니다. 위생적인 문제도 있지만 저에게는 ‘오늘도 해보자’고 기합을 넣는 의식과도 같은 거죠. 개점 직전 치르는 저만의 의식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작업용 앞치마를 공들여 입는 겁니다. 끈을 단단하게 묶으며 생각하죠. ‘앞치마를 입은 나는 무적이다. 어떤 손님이든 만족해 보이겠다.’”

스시(초밥)의 본산 일본 도쿄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쉐린의 별을 따낸 문경환(36) 셰프의 하루는 마치 구도자처럼 보인다. 스스로도 “요리를 한다는 건 즐겁기도 하지만 수행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오후 11시 30분에 마감해 서너 시간 자고 오전 다섯시면 다시 시작하는 하루를 일 년에 290일 가까이 한다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때로는 지치기 마련”이라며 “일하기 위해서는 기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토록 치열한 삶을 한국도 아닌 타지인 도쿄에서 어떻게 13년간 이어갈 수 있었을까. 문 셰프는 “왜 이걸 하느냐고 묻는다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스시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와중에도 손님이 오는 순간 금세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고 했다. 이어 “눈앞의 손님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직접 드시는 모습까지 지켜볼 수 있는 건 ‘카운터 스시’를 하는 요리인이 유일할 것”이라며 “내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는 것만큼 보람되고 쾌감을 느끼는 일도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경환 셰프. 오승현기자

문 셰프의 시작은 중학교 3학년으로 거슬러 간다.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푹 빠져 ‘초밥왕’이 되겠다 꿈꿨고 이후 그 꿈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스시 전문점에서 일하다 더 깊은 맛의 스시를 위해 24세에 일본으로 향했다. 서투른 일본어 탓에 6개월간 자리를 잡지 못했던 그는 귀국 전 제일 맛있는 스시나 먹어보자는 마음에 일본 최대 스시 명가 중 한 곳인 ‘가네사카’로 향했고 그곳에서 셰프의 눈에 들어 그룹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됐다. 그는 “처음 1년은 홀 서빙과 설거지만 했고 온종일 생선 머리만 따기도 했으며 호텔 연회장에서 하루 1000인분 이상의 초밥만 미치도록 쥔 시간도 있었다”고 했다. 이후에도 7석 카운터에서 점심 2회전을 담당하는 셰프로 3년을 보낸 뒤에야 겨우 헤드셰프의 자리에 올랐다. “그룹 내에서는 초단기간 엘리트 코스를 거친 셈”이라며 웃었지만 꼬박 9년이 걸렸다.

이런 시간을 넘어 2019년 11월 도쿄 아자부주반에 그의 일본 활동명을 딴 ‘스시야쇼타’가 문을 열었다. 스시야쇼타는 개업 약 1년 만인 2020년 말 ‘미쉐린 가이드 도쿄 2021’에 처음 이름을 올려 3년째 1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도쿄에만 3000곳이 넘는 스시 전문점 중 별을 딴 곳은 수십 곳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예약을 하려면 최소 3개월이 필요하다는 가게를 두고 최근 한국을 찾았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호텔의 일식당 ‘하코네’에서 이달 4일부터 열흘간 열린 ‘스시야쇼타 오마카세’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미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호텔 측이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모션은 예약을 연 지 하루 만에 모든 좌석이 마감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13년 만의 한국 방문은 문 셰프에게도 신선한 경험이 됐다고 한다. 그는 “스시에 진심인 분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며 “생선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소통이 잘될까 내심 걱정했는데 맛부터 식재료에 대한 지식까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 굉장히 즐거웠다. 먹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마카세 등 미식을 더 잘 즐기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오마카세(お任せ·맡기다)’를 드실 때는 말 그대로 스시를 쥐는 사람에게 모든 걸 맡겨 보시라는 게 제가 권하는 방법입니다. 못 먹는 게 나오면 어쩌나, 먹는 방법이 맞는 걸까 고민하시기보다는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셰프에게 시간을 모두 맡긴 채 리듬을 타보는 거죠. 스시를 즐기는 것은 물론 그 시간과 공간, 분위기와 냄새, 소리 등 오감을 모두 즐기며 식사의 시간을 휴식의 시간으로 채워 보셨으면 합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사진=오승현 기자 stor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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