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확대 '낙수효과' 갑론을박…"지원 정책 병행하면 효과"(종합)
의대 증원 '낙수효과' 놓고 의료계 내부서도 갑론을박
의사단체 강력 반대하지만, 지방국립대는 "당장 늘려야"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권지현 기자 = 정부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그 효과를 놓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전체 의사 수를 늘리면 자연스레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에서 근무하는 의사도 늘어날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낙수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고, 성형외과, 피부과 등으로 '쏠림 현상'만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의료 인프라 붕괴 위기를 겪는 지방의 국립대병원과 여러 전문가들은 낙수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며, 의대 정원은 당연히 늘려야 한다고 반박한다.
정부는 단순한 의사 수 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고 전제한 뒤 필수의료 지원 정책을 함께 추진해 필요한 곳에 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되게 하겠다고 밝혔다.
의사단체 "낙수효과 없다…필수의료 수가 인상이 급선무"
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는 필수의료 분야로의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의사 수를 늘려봤자 비급여 진료로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피부과, 성형외과 등으로 쏠림 현상만 더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상운 의협 부회장은 "의사 증원으로 반드시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가 늘고, 지역 의사가 양성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오히려 미용성형이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 그때는 정책적 해결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의협 회장이기도 한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는 더 과격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한 언론 칼럼에서 "칼자루는 저들이 아니라 우리가 쥐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자"며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전공을 하지 말라는 정부의 강력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필수의료를 포기하고 비급여 시장에 뛰어들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 확대보다는 '수가 인상' 등으로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을 끌여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회장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과감한 수가 개선, 환자를 소신 있게 치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 수련비용의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의사 출신인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전날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낙수효과는) 미미하다고 봐야 한다"며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원가 보존 즉 수가 인상을 주장했다.
필수의료 현장의 의사들도 수가 인상을 강력히 요구한다.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쌍꺼풀 수술보다도 분만 수가가 낮은 게 현실인데 의사를 늘려봤자 여기로 오겠느냐"며 수가의 현실화를 촉구했다.
"수익 나빠지면 필수의료 올 것"…지방병원 "당장 의대 정원 늘려야"
의사단체의 주장과 달리 의대 정원 확대의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의사들의 수입이 다른 직업에 비해 압도적이어서 의대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의사의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고 매력도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국장도 "의사가 충분하게 추가되면 내부 경쟁과 수요·공급이라는 시장 논리에 따라 적절히 배분될 수 있다"며 "낙수 효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형외과, 피부과 등으로 무한정 의사들이 몰릴 수는 없는 노릇이며, 이들 분야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수익성이 나빠지면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이 갈 것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성형외과, 피부과 등은 이른바 '경기 사이클을 많이 타는' 업종이어서 불황과 의사 공급 확대가 겹치면 수익성이 의외로 나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방 국립대병원은 의대 정원 확대에 더 적극적이다. 당장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남우동 강원대병원장은 17일 국회 교육위 국감에서 "경험과 소신에 비춰 의료인력 확충은 100% 필요하며, 지금 해도 늦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 확대해도 현장에 배출되는 시기는 앞으로 10년 후이며, 현장에서는 10년 후까지 어떻게 버티느냐를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동헌 경북대병원장도 "지역 필수의료와 중점 의료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의 애타는 호소는 지역 의료 인프라가 처한 열악한 현실이 그 배경이다.
지방 의료기관은 3억원, 4억원의 고액 연봉을 주고도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져 이제 지방 의료 인프라는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주진형 강원대의대 교수는 "지역의료 붕괴의 원인은 무엇보다 의사가 부족한 데 있다"며 "일단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 확대로 모든 문제 해결하려는 것 아냐…패키지 정책 추진"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사 수가 늘어나면 불필요한 검사가 많아져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늘어난다거나,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가는 낙수효과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낙수효과가 없다거나 재정 지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건 과거 1970년대 이론일 뿐이고 이후에 정반대 연구가 많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저희도 증원을 통한 낙수효과만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함께 추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함께 진행되면 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재정 지출도 장기적인 대책을 추가 운영해 필요한 의료서비스가 적정하게 공급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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