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 넓히는 푸틴…시진핑과 회담 후엔 ‘핵가방’ 노골적 노출

박효목 기자 2023. 10. 1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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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수행하는 러시아 해군 장교 2명이 소위 ‘핵 가방’으로 알려진 가방을 들고 있다. 이 가방은 푸틴 대통령이 핵 공격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국영 ‘럽틀리’ 통신 캡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중동전쟁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포럼’ 참석을 계기로 국제사회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에서 헝가리, 태국, 베트남 정상 등과 양자 회담을 했고, 글로벌 지도자인양 서방 세계를 향해 현안을 두고 훈수를 두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 러시아 국가두마(하원)가 18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철회 법안을 가결하면서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커지고 있다.

● 푸틴, 노골적으로 ‘핵 가방’ 노출

러시아 하원은 이날 CTBT 비준을 철회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은 17일 텔레그램에 “미국은 자신들의 헤게모니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국제적으로 전략적 동등함이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CTBT 비준 철회는 상원 심의를 거쳐 푸틴 대통령이 서명하면 절차가 완료된다.

1996년 유엔총회에서 승인된 CTBT는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조약이다. 러시아는 1996년 이 조약에 서명하고 2000년 비준했다. 푸틴 대통령은 1996년 이 조약에 서명만 하고 비준은 하지 않은 미국과 같이 행동하겠다며 CTBT 철회를 주장해왔다.

러시아가 CTBT를 없던 일로 만들면서 미국 등 서방을 상대로 한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도 강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막는 방법으로 핵실험 재개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핵을 통해 서방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주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마친 뒤 일명 ‘핵 가방’을 든 해군 장교들을 노골적으로 노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해군 장교 2명이 각각 핵 서류 가방을 들고 푸틴 대통령을 뒤따르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다. ‘체게트’라고 불리는 이 핵 가방은 대통령과 군 고위부를 연결하는 보안통신 수단으로 극비의 전자지휘명령 네트워크를 통해 전략로켓부대에 명령을 하달한다. 대통령이 항상 갖고 다니지만 외부에 거의 노출하지 않는다. 러시아 즈베즈다TV가 2019년에 방영한 영상에 따르면 핵 가방에 여러 개의 버튼이 있고 이 중 ‘지휘’ 버튼은 백색의 발사 버튼과 적색의 취소 버튼 두 개로 구성돼 있다.

● 국제사회 향해 중재자 자처, 훈수까지

우크라이나 사태로 20개월 동안 고립무원 위기에 있던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서방의 관심이 중동에 쏠린 사이 본격적인 대외 행보에 나선 모습이다.

푸틴 대통령은 16일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은 물론 이집트 시리아 이란 등 5개국 지도자와 연쇄 통화를 했다. 일종의 ‘중재자’를 자처한 것이다. 러시아 외무부도 19일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을 위한 27톤의 구호물자를 이집트를 향해 보냈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러시아 페름에서 열린 ‘제11차 국제스포츠포럼’에서는 러시아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 금지는 ‘인종 차별’이라며 거침없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지도자 몇몇 때문에 우리는 올림픽 경기 초대가 최고 선수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일종의 특권이며 실력이 아닌 정치적 제스처로 얻어지는 것임을 알게 됐다”면서 “출전 금지는 러시아에 대한 인종 차별”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몇몇 국제스포츠단체는 러시아 선수들의 참가를 금지하고 있고, 2024 파리올림픽 출전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 따른 것이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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