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올려치기’와 관찰예능[B급 사회]

고희진 기자 2023. 10. 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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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주로 사용되는 밈에 가까운 말들이지만, 현대 사회를 잘 설명하는 용어들과 대중문화를 연결해 이야기합니다.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영상 캡처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영상 캡처

평균 올려치기. 단어만 들어서는 어떤 뜻인지 짐작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지난해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글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글의 제목은 ‘대한민국을 망친 최악의 문화’다. ‘인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와서 결혼할 때는 최소한 수도권 자가는 있어야 하는, 명품백이 당연시된 것처럼 여기는 사회에 대한 날것의 비판이었다. 요즘 세대가 평범한 삶의 기준을 과도하게 높게 설정해 진짜 평범한 삶은 실제보다 많이 뒤처진 것처럼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고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는 뜻이다. 평균 올려치기를 일종의 ‘루저 양산’ 문화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정제되지 않은 짧은 내용인데도 해당 글이 화제가 되면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평균 올려치기’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지난 7월엔 구독자 100만명이 넘는 한 지식·교양 유튜버가 이 글에 대해 다뤄 화제가 됐다. ‘진짜 한국인의 평균을 알아보자’는 것이었는데 통계수치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자가를 소유한 이들이 과반을 넘지 못하고, 평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위 소득 또한 200만원 중후반대라는 것을 설명했다. 해당 영상은 이달 기준 조회수가 190만회를 넘기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댓글엔 “한국은 평균과 다양한 삶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 서로가 덜 불행할 것”이라거나 “(허들을 넘지 못하면) 패배자로 인식하는 분위기”를 지적했다.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루가 멀다 하고 펼쳐지는 화려한 삶들이 이 같은 시류를 주도하고 있다는 글도 많았다.

이 와중에 연예인이 출연하는 관찰 예능이 비판받았다. MBC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에는 연예인의 화려한 생활이 그대로 드러나다보니 시청자들이 ‘파인 다이닝’이나 ‘오마카세’를 즐기는 스타들의 생활양식을 동경하는 동시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낮춰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 혼자 산다> 유튜브에는 종종 “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나 혼자 잘산다’ 아니냐”는 댓글이 올라온다. 연예인의 집이 드러나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끝나면 육아카페에 연예인이 사용한 육아 용품의 브랜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올라온다. ‘정보 감사하다’라는 댓글도 있지만 ‘부럽다’는 글도 많다. 그래서일까. 일부는 “난 그래서 연예인 관찰 예능 안 봐”라고 얘기한다.

제작진에게도 변명은 있다. 주말이나 아침 드라마에 재벌이 많이 나오는 건 자극적인 재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간접광고(PPL) 때문이기도 하다. 해당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주인공이 그 회사의 실장이나 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매일 로고를 노출시킬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도 회마다 새롭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대중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그래서 조금 값이 비싼 취미나 미식 생활이 방송 에피소드로 사용된다.

평균 올려치기에 대한 비판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한국을 망친 건 ‘경쟁지상주의’ ‘비교 문화’ ‘남 눈치 보는 문화’ 때문이라는 말과도 비슷하다. SNS가 등장한 이후 과시 문화가 더욱 심해졌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것은 다양한 말들로 변주되면서 젊은이들의 분노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 역시 대중문화에서 포착된다. 지난해 발표된 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 같은 것이 예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이 노래는 과시 문화에 대한 유쾌한 반발로 인기를 얻었다. 미국에선 ‘Rich Men North Of Richmond’라는 노래가 지난여름 화제였다. 대략 난 매일 고생해서 일하는데, 리치먼드 북쪽에 있는 부자들이 모든 걸 가져간다는 내용이 담긴 노래다. 앨범 한 번 발매한 적 없는 무명 컨트리 가수 올리버 앤서니가 불렀는데, 지난 8월엔 빌보드 싱글 차트인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차트 50위권을 유지 중이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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