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정부·여당, 긴축재정 기조 접을까
국민의힘이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소상공인 등 취약층 관련 예산 증액을 추진하고 나섰다. 장기화하는 경기 침체로 인한 민심 악화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진단에서다. 일단 여당은 긴축재정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이 목전이라 여당 안에서도 예산 증액 요구가 커 기조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일 여권에 따르면, 최근 국민의힘은 정부가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656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착수했다. 소상공인, 청년 등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예산을 중심으로 증액 여지가 있는 부문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등 2기 주요 임명직 당직자들과 논의 과정에서 “긴축재정 기조는 지키되, 취약계층에 시급히 필요한 분야 예산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의장은 지난 17일 “서민과 소상공인, 청년들과 취약계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정책·입법·예산으로 국회 본연의 임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당 핵심 관계자는 “김 대표가 민생 관련 예산은 늘리자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당 대표실 관계자는 “소상공인뿐 아니라 취약계층에 필요한 예산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며 “당이 주도해 민생에 더 집중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강서구청장 선거 다음날인 지난 12일에는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을 국회로 불러 향후 경기 전망을 듣고 경기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기재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우려 등을 반영해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정부·여당은 추가적으로 관련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정부가 앞서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의 지출 증가율은 2.8%다.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최소 증가율이다. 특히 연구개발(R&D)·국고보조금 등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되면서 관련 분야에서 반발이 크다. 또한 올해 역대 최대인 59조원 규모의 세수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지방 이전 재원이 23조원이나 삭감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29일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일각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예산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채 발행을 통한 지출 확대는 미래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떠넘기고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기업 활동과 민생경제 전반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정치 보조금 예산, 이권 카르텔 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했고, 총 23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강조했다. 여당에서도 정부의 이 같은 기조가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가 나왔지만,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을 “재정 만능주의”라고 배격한 윤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력해 공개적인 반발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로 차가운 민심을 확인하면서 잠복해 있던 여당 내 요구가 표면화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지역구에서 만나는 소상공인들이 다 어렵다고 한다”며 “표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경제다. 이대로는 총선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여당 의원은 “경제가 예상보다 더 나쁜 상황인데, 추경호 부총리(겸 기재부 장관)는 너무 낙관적으로 ‘상저하고’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증액이 유력한 분야는 소상공인·청년 지원 예산, 각 지역 및 보조금 사업 예산, R&D 예산 등이다. 내년도 R&D 예산은 올해보다 5조2000억원(16.7%)이나 삭감됐다.
국민의힘은 긴축재정 기조에 맞게 예산안 총액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분야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총액 증액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 소속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관계자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증액을 위해 당에서 챙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R&D 사업 (예산)과 국고보조금이 삭감됐다. 이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정부가 내년에 적극적인 확장재정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했다.
예산 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 정부도 여당의 증액 요구를 최대한 수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안 심의 단계니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며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정부가 당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김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유 의장, 이 사무총장은 전날 윤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당이 주도적으로 민생 정책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다만 추 부총리는 이날 기재위의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건전재정 기조는 정권과 관계 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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