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의료거점 키우려면…'지역인재 육성·재정지원' 관건(종합)
환자들 '빅5 쏠림' 막으려면…"지방 국립대병원 질 높아지도록 대폭 지원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권지현 기자 = "환자도 서울로, 의사도 서울로 가는 거죠."
익명을 요구한 지방의 한 국립대병원 교수는 지역 의료시스템의 붕괴 위기를 한마디로 이같이 표현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에 남으려는 의사가 없고, 의사 부족 등으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보니 환자들은 더욱 외면하는 '악순환'에 갇혔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가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19일 지방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필수의료를 강화한다는 '큰 그림'을 내놓으면서 지역의료 인프라 붕괴 우려가 해소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지역 국립대 중심의 의대 정원 확대 가능성을 점치면서 '지역인재'를 대대적으로 육성하는 게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의료 서비스 질을 '확'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지원과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의사들 수도권 쏠림 심각…'지역에 자리잡는' 의사 키워야
국내 지역 간 의료 불균형과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인구 1천명당 활동 의사 수는 서울 3.47명, 경북 1.39명으로 서울과 지방이 극심한 격차를 보인다.
비수도권에 살면서 서울의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서울아산병원)으로 올라와 진료받은 인원은 지난해 71만여명에 달했다. 진료비만 2조원이다.
정부는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지역 국립대병원이 안정적으로 지역민을 진료할 수 있는 인적·물적 여건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핵심적인 정책으로는 지역에서 성장한 학생이 지역 의대에 입학해 그 지역의 의사로 성장하는 '지역인재' 선발을 확대하는 정책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며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윤석준 고대 의대 교수는 "연고도 없는 의사들이 지방의 정주 여건을 견딜 수 있겠느냐"며 "다른 지역에서 온 의사들이 졸업 후 다시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국립대병원 등 지방 의료기관들이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과 직결된다. '응급실 뺑뺑이'의 근본 원인이라는 얘기다.
대안으로는 지방국립대 등 지방 의대의 정원 확대와 '지역인재 전형'의 대폭 강화가 꼽힌다.
주진형 강원대 의대 교수는 "의사들이 지방에 머무르게 하려면 지역인재 전형을 모든 지방대 의대에서 50% 이상으로 대폭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석준 교수는 한시적으로라도 '지역인재 100%'까지 시행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도 내놓았다.
대한의사협회가 우리나라 활동 의사 4천18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지방 광역시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지방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60%에 달했다.
반면 수도권에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지방에서 일하는 비율은 13%에 그쳤다.
일부에서는 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무를 부여해 학생을 선발하는 '지역의사제'를 대안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정백근 경상국립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최근 불거진 지역 문제와 인력을 매칭할 수 있는 건 지역의사제뿐"이라며 "강제성 없는 지역인재 전형은 간접적인 방법일 뿐이므로, 선발 시 의무를 부과하고 이러한 의무를 받아들일 사람을 뽑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지역의사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늘어난 의사들이) 지역에서 근무하게 하기 위해서 지역의사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있는 걸로 안다"면서도 "저희는 가급적 자발적으로 지역에 거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데 방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출신 학생이 지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하면 그 지역에 남을 확률이 85% 이상이라는 연구도 있다"며 "지역 인재를 더 많이 확보하고 그곳에서 수련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 수련체계를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수련병원의 전공의 비율을 기존 6대 4에서 5대 5로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의대 입학정원과 연계해 배정할 방침이다.
국립대병원 의료서비스 질 '확' 높여야…"정부 재정지원 필수"
국립대병원이 지역 필수의료 거점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지원과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방의 환자들이 서울의 '빅5 병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결국 지방 의료기관의 서비스 질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의료계 종사자는 "지역 간 의료 서비스의 격차가 크다"며 "환자들이 더 나은 진료 환경과 양질의 서비스를 받고자 지방에서 서울로 찾아오는 걸 질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결국, 지방 국립대병원의 의료 서비스 질을 대폭 높여 환자들이 서울의 '빅5 병원'이 아닌 지방 의료기관으로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방 국립대병원의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2021년 기준으로 전국 14개 시·도 국립대병원 17곳은 의료수익 6조6천860억원, 의료비용 7조300억원 등 3천44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런데도 국고지원은 복지부에서 771억원, 교육부에서 653억원 1천424억원에 불과하다.
정재범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정부가 열악한 처우와 노후한 인프라 개선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해야 국립대병원이 살아나고, (민간 병원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지방의 한 국립대병원장은 "지금처럼 기관(국립대병원) 근무와 개원의의 수익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다들 교수가 아니라 개원하려고 할 것"이라며 "여기서 근무하는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난이도에 따른 수가 조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 등으로 늘어난 의사를 지역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립대병원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역인재 선발을 확대하더라도, 이들이 졸업 후 지역에 머무르지 않으면 인력 확보는 물거품으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
주진형 교수는 "국립대병원이 지역에서 인력을 양성하고 지역의료를 책임질 수 있게 하려면 정부에서 국립대병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지방 국립대병원을 수도권의 상급종합병원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필요한 정책적 지원과 재정 투자, 인력 공급을 지속하는 긴 여정이 될 것"이라며 "당장 내년부터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구조적인 개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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