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주인 돼야 행복해요"
'20년 주지' 미황사 떠나
맨발걷기 참선 수행자로
"머리에 집중됐던 번뇌가
발끝에 몰리면 현재에 집중
과거 생각·미래 걱정 벗어야"
양말을 벗고 맨발로 흙길을 걷는 '맨발걷기' 열풍이 뜨겁다. 맨발걷기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여기에 행복을 여는 열쇠도 맨발걷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스님이 있다. 땅끝마을 미황사를 세계적 사찰로 만든 금강스님(57)이다.
최근 스님이 도서관장이자 교수로 있는 김포 중앙승가대를 찾았을 때 스님은 학인 6명을 앞에 두고 한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칠판에는 '父生我身 母鞠我身(부생아신, 모국아신)'으로 시작하는 한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다'는 뜻이다.
"유교식으로는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한 글귀지만 불교식으로는 나의 존재를 묻는 겁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오고 누구를 의지하는가. 아이들에게 나와 관계된 것들을 하나씩 적으라고 해보세요."
초등학생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템플스테이 '한문학당'에서 가르칠 내용을 미리 학인 스님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려서는 부모에게, 커서는 친구와 연인에게, 결혼해서는 배우자나 돈에 의지합니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이나 종교에 의지하기도 하지요. 의지하는 대상이 달라질 뿐, 의지하는 버릇은 계속됩니다."
자리를 옮겨 도서관장실에서 질문을 던졌다. 왜 의지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즉답이 돌아왔다. "다른 것에 의지하게 되면 어려움과 괴로움, 고통이 수반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끝없이 변화하기 때문이죠."
결국 자기 스스로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불교다.
맨발걷기는 불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 항상 머리에 의식을 둡니다. 그러다 보면 금방 지쳐요. 잠도 잘 오지 않고요. 의식을 발에 두면 위로 치솟았던 열들이 내려가 머리가 맑아지죠."
스님은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이 발에서 일어나는 감촉을 느끼기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는 의식이 살아납니다."
많은 선인이 현재를 살라고 말해왔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제의 생각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에요. 지금밖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없어요. 나무 한 그루도 신비롭고 아름답고 고마움 속에 존재하죠. 차 한 잔도, 과일 한 쪽도 그러하고, 숨을 쉬는 것도 밝은 햇살도 그렇습니다. 수많은 행복의 조건들인데 이것을 못 느끼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가난해지는 것이죠."
그 역시 현재라는 땅에 온전히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수행자다.
전남 해남 출신인 스님은 열일곱 살 대흥사 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00년부터 미황사 주지를 맡아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선 수행, 괘불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미황사를 '세상과 호흡하는 산중 사찰의 전형'으로 만들었다. 2021년 그가 미황사를 떠난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들이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며 지역 신문에 탄원서까지 썼다. "오래 살다보면 인연이 있습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안 끼는데 가만히 있으면 달라붙어요. 지금 홀가분하게 아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즐겁습니다. 스님들을 가르치는 보람도 느끼고요."
그는 2년 전부터 주중에는 중앙승가대에서 학인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안성 비봉산 자락에 있는 참선마을(옛 활인선원)을 운영하며 세상과 소통한다.
불쑥불쑥 8만가지 번뇌가 들끓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주체가 마음입니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면 내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지요. 하지만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분별하고 차별하고 욕심 부리고 번뇌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질투하고 짜증 내죠. 만약에 화가 나도 그걸 다스리지 못하면 그때 주인은 화를 불러일으킨 상대방이 됩니다.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죠. 과거와 비교하면 과거가 주인이 되고, 여러 가지 걱정을 갖고 있으면 미래가 주인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주인이 돼야 행복합니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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