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종말의 날”…시신·화약 냄새 뒤엉킨 가자지구 병원
‘아비규환’ 주민들, 아이들 시신 및 신체 수습
부상환자 수용 한계치 넘은 시파 병원 의사들
“발전기 연료 부족···장비·약품·병상 등 필요”
피에 젖은 매트리스와 옷가지, 개인 물품들이 텅빈 병상들 사이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 주차장의 차량들은 유리창과 바퀴가 모두 날아가고 불길에 검게 그슬렸다. 까맣게 탄 야자수 아래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강력한 폭발로 인해 외래병동과 응급병동의 벽은 붕괴됐고 병원에는 시신과 폭발물의 냄새가 뒤섞여 있다.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는 전날 밤 대규모 폭발이 할퀴고 간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BBC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전했다.
최소 471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은 BBC에 “(이스라엘 정부의 소개 명령에 따라) 집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면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이) 폭발해버렸다”고 말했다.
병원에 있던 이들은 기존 환자와 의료진,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대피에 나선 민간들이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폭발 책임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이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평생 잊지 못할 아비규환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날 알아흘리 병원에서 사고 현장을 수습 중이던 가자지구 주민 사메르 타르지(50)는 FT에 “피난민들은 학살이 일어났을 때 밥을 먹고 있었다”면서 “아이들의 시신과 신체 일부를 수습했다. 내가 앞으로 1000년을 더 산다고 하더라도 그 광경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데일리메일도 의사들과 구조대원들이 머리와 팔다리를 잃은 어린이들을 수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조작업을 돕고 있는 아메드 타페시는 “이건 학살”이라면서 “(희생자들의) 눈, 팔, 다리, 머리를 수습했다. 내 평생 이런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알아흘리 병원 경비원 모하메드 알보르노는 FT에 “종말의 날 같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큰 폭발과 함께 뭔가 거대한 것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는데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어요. 비명 소리가 크게 들렸고 수백구의 시신과 신체 일부가 흩어져 있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350명은 폭발 후 구급차 및 개인 차량을 통해 3km 떨어진 가자지구 최대 병원인 시파 병원으로 이송됐다. 상대적으로 부상이 경미한 이들은 걸어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폭격으로 이미 환자 수용 한계치를 넘긴 시파 병원 의사들은 알아흘리 병원 폭발 사고 부상자들이 밀려들면서 마취도 하지 못한 채 수술을 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 병원 의사 아부 셀미아는 발전기 연료가 몇 시간 분량 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장비, 약품, 병상, 마취제 등 모든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아흘리 병원으로 되돌아온 주민도 있다고 BBC는 전했다. 한 남성은 돌아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면서 “어디로 간다 말인가. 1948년처럼 또 떠나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이후 강제추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인 70만명 이상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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