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가자 '인도적 지원' 물꼬 텄지만…중동 달랠 수 있을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시간 반에 걸친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확고한 연대를 과시하는 한편 가자지구로의 구호품 반입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확전을 막기 위해 필요한 아랍권의 분노를 진정시키는 데에는 실패하면서 반쪽 외교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찾아 "전례 없는 원조"를 거듭 약속하며 이란 등에 개입하지 말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띄웠다. 이어 그는 이스라엘에서 1400명 넘는 사망자를 낸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이스라엘판 9·11 테러"로 규정하면서도 "분노를 느끼되 휩쓸리지 마라. 9·11 이후 미국은 정의를 찾았으나 실수도 있었다"고까지 말하며 과잉 보복을 경계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자지구로 구호 물품 반입을 위한 물꼬를 텄다. 바이든 대통령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이집트에서 라파 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로 트럭 20대 분량의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구호단체가 필요하다고 추정하는 양의 약 8분의 1에 해당한다. 이르면 20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하마스 압박을 위해 가자지구로의 물, 식량, 연료, 전기 등의 공급을 원천 봉쇄해온 이스라엘 측은 "구호 물자가 하마스로 흘러들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반입을 허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에 아랍 주변국의 동의를 얻어낸다는 목표 달성엔 사실상 실패했다는 게 외교 관측통들의 평가다. 사라 파킨슨 존스홉킨스대학 정치학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완전히 이스라엘 편에 선 것으로 비춰졌다"면서 "이런 분위기는 중동 지역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도착 직후 가자 병원 폭발의 배후와 관련해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쪽에 책임이 있다"고 밝히면서 아랍권의 분노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파킨슨 교수는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발언은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니라 정치적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면서 "많은 미국 동맹국들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했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스라엘과 미국 국방부가 공유한 정보를 확인한 뒤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당국도 이날 병원 폭발 현장 영상을 공개하며 분화구 모양을 토대로 공습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대원을 감청한 음성 파일도 공개했다. 파일엔 병원 폭발이 이스라엘이 지목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이슬라믹지하드의 로켓 오발 때문임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병원 폭발로 불붙은 아랍 국가들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이슬라믹지하드는 "이스라엘이 잔혹한 학살의 책임을 피하려는 시도"라며 "이스라엘의 증거는 거짓이고 근거가 없다"고 맞섰다. 리야드 만수르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도 "이제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비난하기 위해 말을 바꾸고 있다"며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에도 레바논, 이라크, 이란, 요르단, 예멘, 이집트 등에서 시위가 이어졌으며 이스라엘의 주장에 대한 의혹이 컸다고 전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미국NBC 인터뷰에서 "이 지역에선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독립적인 국제 조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반박 불가능한 증거가 나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애틀린틱카운슬의 조나단 파니코프 중동 전문가는 중동 정서와 관련해 "이 지역 아랍 지도자들은 자국 안보를 먼저 걱정한다"면서 "반이스라엘 정서가 강한 여론을 거스르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앞으로 하마스 제거 계획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18일에도 가자지구 공습은 이어졌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18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를 공습해 7일 이스라엘 민간인 학살 주범인 하마스 특공대 누크바 대원 1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로의 지상군 투입 준비 태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19일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문도 논의 중이라 침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팔레스타인 보건 당국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공습으로 지금까지 약 35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된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선 시위를 벌이던 남성 두 명이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보고되는 등 불안정이 고조되고 있다.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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