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돈으로 생색… '돈잔치' 은행의 공헌은 정말 공헌인가 [視리즈]
고금리와 서민의 눈물➋
고금리에 역대급 수익 올린 은행
이자 수익으로 은행권 ‘돈잔치’
지난해 국내 5대 시중은행
성과급 1조3823억원 집행
사회공헌에는 인색한 은행들
수익 늘었지만 사회공헌 줄어
꼬박꼬박 이자 받는 서민금융
그나마도 고객 돈으로 생색
취약계층 살피는 노력 필요해
고금리를 틈타 은행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자 유럽 몇몇 국가가 '횡재세'를 부과하면서 맞섰다. 바람처럼 날아온 이득을 끌어들여 나라곳간을 채우겠다는 포석에서다. 우리나라에서도 은행에 횡재세를 매기는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정부와 집권여당의 반대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고금리에서 기인한 횡재를 누린 금융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해법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역대급 실적잔치 = 역대급 실적을 이번에도 경신했다. 대부분의 기업과 서민들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시대를 힘겹게 버티는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국내 금융그룹 이야기다. 국내 5대 금융그룹(KB금융그룹·신한금융지주·우리금융그룹·하나금융그룹·NH농협금융지주)이 올 상반기 기록한 당기순이익은 10조8882억원이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상반기(10조1979억원)보다 6.8% 증가하며 반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5대 금융그룹의 호실적을 견인한 건 은행들의 이자 수익이다. 올 상반기 5대 시중은행의 이자 수익은 20조4906억원에 이른다. 고금리 기조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5대 금융그룹은 막대한 수익을 성과급·희망퇴직금·배당에 쓰며 '돈잔치'를 벌였다. 황운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성과급으로 1조3823억원을 썼다. 은행 임원은 평균 1억400만~2억1600만원의 성과급을 챙겼고, 직원들도 1인당 평균 1000만~3900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희망퇴직자에게 2~3년치의 평균 연봉을 지급하는 특별퇴직금에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강민국 의원(국민의힘)이 발표한 '국내 은행권 희망퇴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은 2357명의 희망퇴직자에게 1조2629억원의 퇴직금을 지급했다. 희망퇴직자 1인당 평균 5억3000만원의 퇴직금을 받아갔다. 5대 금융그룹이 지난해 현금성 배당으로 지급한 금액도 4조7168억원을 기록했다.
단순 계산으로 5대 금융그룹이 지난해 성과급·희망퇴직금·배당에 총 7조3620억원을 썼다는 건데, 같은 기간 5대 금융그룹이 올린 당기순이익은 18조815억원이었다. 순이익의 40.7% '돈 잔치'에 사용한 셈이다.
■ 실적잔치의 그림자 = 은행이 '돈잔치'에 흥겨워할 때 서민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치솟은 금리에 원리금 부담이 커지면서 돈을 갚지 못하는 차주借主가 크게 증가했다. 은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이유다. 지난 2월엔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은행의 돈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야당을 중심으로 횡재세 논의가 이뤄지면서 관련법까지 발의했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 막히면서 흐지부지됐다. 에너지 기업과 은행은 물론 제약·식품업계에도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는 유럽연합(EU) 주요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와 미국 싱크탱크 조세재단 자료에 따르면 체코·리투아니아·스페인·헝가리 등이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 금융권의 반론들 = 물론 여기엔 반론이 있다. KB금융그룹 산하 KB경영연구소는 지난 4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은행 임직원에게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건 기업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며 시장에서 일고 있는 성과급 잔치 논란을 반박했다.
은행들은 사회적 공헌 활동(CSR)에도 앞장서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9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은 취약계층 등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양적완화조치로 예금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었던 유로지역 은행과는 제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초과이득세(횡재세) 논의의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시중은행은 2019년 이후 매년 1조원이 넘는 돈을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2021년 1조617억원이었던 사회공헌 비용을 지난해 1조1305억원으로 3.9%(688억원) 늘렸다.
■ 은행 CSR의 민낯 = 그럼에도 은행의 사회공헌을 둘러싸곤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숱하다. 왜일까. 우선 거둬들인 수익에 비해 사회공헌 금액이 인색하다. 2020년 12조1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021년 16조8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사회공헌 금액은 1조929억원에서 1조617억원으로 되레 감소했다. 지난해 1조1305억원으로 3.9% 늘었지만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이 9.6%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실제로 당기순이익 대비 사회공헌의 비율은 2020년 9.02%에서 지난해 6.11%로 떨어졌다.
내실이라도 탄탄하면 다행이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은 2021년 1조617억원의 사회공헌 금액 중 42.7%인 4528억원을 서민금융에 사용했다. 나머지는 지역사회·환경·교육·글로벌·체육·문화예술 등이 분야에 썼다. 다른 분야는 차치하고라도 서민금융은 취약계층의 눈물을 닦아줬을까.
은행의 서민금융은 새희망홀씨 대출, 햇살론15, 햇살론 유스, 햇살론 뱅크 등이다. 문제는 금리가 만만치 않다는 거다. 올 상반기 새희망홀씨 대출(신규취급 기준)의 평균 금리는 연 7.8%로 낮지 않은 수준이다. 국내 은행의 평균 신용대출 금리 6.8%(6월 평균)보다 1.0%포인트 높다. 햇살론의 경우엔 금리가 8~15.9%로 더 높다.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이라고 보기엔 어색한 금리다.
서민금융을 사회공헌 활동으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은행들이 취약계층에게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 수익을 챙기고 있어서다. 은행이 손실 위험성을 감수하고 취약계층을 돕고 있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햇살론 등 서민금융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정부가 이를 메워주기 때문이다(대위변제제도). 차주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은행은 한푼도 손해를 볼 일이 없다는 거다.
이뿐만이 아니다. 은행마다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씩 출연하는 서민금융 재원이 온전히 은행의 부담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은행의 서민금융 지원금은 고객이 찾아가지 않은 휴면예금과 소멸시효가 만료된 자기앞수표가 대부분이다. 사실상 남의 돈으로 생색을 내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금융권의 서민지원기능을 효율화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횡재세는 취약차주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은행의 징계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 스스로 취약차주의 채무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은행의 사회공헌금액만 강조해선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말을 이었다. "은행권이 대중의 비판을 받는 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사회통합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회공헌 활동은 금융소비자 중 취약계층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고금리 국면에서 부담이 커진 취약차주의 눈물을 대출로 배를 채운 은행권이 직접 닦아줘야 한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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