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100만명, 구호트럭은 20대···자랑스레 “해냈다”는 바이든

“하마스 압수 않는 조건, 20일부터 통행”
병원 가동 절실한 전기·연료 공급은 빠져
물리력 행사 중재 없어 ‘중동 분노’ 그대로
이스라엘에 영향력 확대···방문 성과 ‘미미’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귀국 중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8일(현지시간) 재급유를 위해 들린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약 7시간 반에 걸친 이스라엘 방문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대립을 완화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구호품 통행이 일부 합의된 것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해냈다”고 자평했지만, 가자지구가 처한 극한 상황에 비하면 미미한 출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기·연료 빠진 지원…난민 100만명인데 구호 트럭은 20대

18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이집트가 라파 통행로를 통한 인도적 지원을 허용해 이르면 20일부터 최대 트럭 20대의 통행이 허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트럭을 통해 물, 식량, 의약품이 지원될 예정이라며 “하마스가 이를 압수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나섰다. 나는 뭔가를 이루러 왔고, 해냈다”고 했다.

이는 일부 진전이긴 하지만 실제 수요에는 턱없이 모자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원의 가장 큰 한계는 지원 물자에 전기와 연료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 식량, 전력, 의약품 등의 반입을 막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는 벌써 열흘 넘게 지속돼 왔다. 이스라엘의 공습 탓에 나날이 증가하는 부상자로 의료 체계는 마비됐으며, 전기와 연료가 바닥나면 조만간 운영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 내 암 환자 약 9000명을 치료하는 유일한 의료시설인 튀르키예-팔레스타인 우정 병원은 연료가 없어 발전기를 돌리지 못해 곧 폐쇄될 처지라고 19일 밝혔다. 수브히 수케이크 원장은 “방사선 검사는 이미 중단됐다. 중환자실과 산소공급장치를 운영하려면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항암치료를 연기한 환자들도 있다”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알아크사 병원의 한 의사는 “인공호흡기가 모두 가동 중인데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아동 환자가 새로 발생해 어떤 아이를 죽게 해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의료진은 치료 가능성이 더 큰 아이를 선택했고 다른 아이는 사망했다”고 휴먼라이츠워치(HRW)에 전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연료와 전력 부족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장작불로 구운 빵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연료를 공급하면 하마스가 군사 장비 운용에 이를 활용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HRW는 “전기와 연료가 빠진 지원은 가자지구 주민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서 “바이든은 불법 봉쇄를 완전히 해제하고 민간인 전체가 물, 식량, 연료, 전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나마 지원하기로 한 구호물자의 양도 극히 불충분하다. 유엔은 이날 가자지구 난민의 규모가 약 100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깝다. 이들은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 등에 몸을 피하고 있으며, 식수가 바닥나 급히 우물을 파는 등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는 실정이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는 구호 트럭을 하루에 최소 100대는 통행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과 같은 수준이다. 리처드 브레넌 WHO 동지중해 긴급지원국장은 “트럭 20대는 시작에 불과하다. (구호품 전달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CNN에 말했다.

이집트 당국에 따르면, 이미 이집트 쪽 라파 검문소 앞에서 가자지구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트럭은 200대 이상, 구호품은 3000t 이상이다. 백악관 측은 앞으로 통행로가 수리된다면 더 많은 트럭이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화 도출도, 중재도 없었던 방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강화 일주일째인 16일(현지시간) 구호품을 실은 트럭들이 이집트 시나이반도 알아리시에서 가자지구로 진입하기 위해 ‘라파 국경 통행로’의 재개통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이번 방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단호하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했지만, 가장 중요한 가자지구 폭격 중단이나 지상 작전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1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논의했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됐다. 미국은 결의안에 ‘이스라엘의 자위권’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방문은 중동에 번지고 있는 분노 완화에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미 중동연구소 오마르 바다르 연구원은 “바이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벌인 것과 같은 바로 그 전쟁 범죄에 대해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써 위선을 보여줬다”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CNN도 “바이든의 방문이 아무런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함에 따라, 중대한 지정학적 상황에서 미국이 가진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줬다”면서 “미국이 사태가 통제불가능으로 치닫는 것을 막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물리적 위험을 감수하고 이번 방문을 강행함으로써 향후 미국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알아흘리 아랍 병원 참사 배후가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공언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윌리엄 웩슬러 연구원은 “그 결과 바이든은 (이스라엘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더는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이 영향력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며 향후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지상작전이 초래할 타격 최소화, 헤즈볼라 개입 억압, 가자지구 민간인 보호, 주변국과의 양자 회담 등에 힘써야 한다고 짚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