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해외로 비상하는 극단 만들고파”
[서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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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단거리패 거쳐 2008년 입단
영화·드라마 단역 꾸준히 출연
다양한 연출자와 계속 작업할 것
“좋은 극단 물려주는 게 내 역할”
“청춘을 모두 여기 바쳤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반대하던 아버지도 첫 주연을 맡은 연극을 본 뒤 ‘처음부터 지원해줬으면 좋았을걸’ 하면서 후회했죠.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돼 여기까지 왔습니다.”
12일 강서구 내발산동 강서구민회관에 있는 노을극장에서 서정록(43) 강서구립극단 ‘비상’ 예술감독을 만났다. 서 예술감독은 용인대 연극과를 나와 2006년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했다. 2008년 10월 강서구립극단으로 옮긴 뒤 15년째인 올해 9월부터 예술감독을 맡게 됐다. 서 예술감독은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강서구를 넘어 활동하는 극단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서구립극단은 2004년 주부 연극 동아리로 시작했다가 그해에 전문 연극인들로 구성된 ‘윤슬’을 창단했다. 윤슬은 2017년 극단 이름을 구민 공모를 통해 비상으로 바꿨다. 비상은 높이 날아올라 구민 곁으로 다가간다는 의미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극단이라서 안정적이고 돈 많이 주는 줄 알고 들어왔죠.” 하지만 월급만으로 생계가 힘들어 따로 아르바이트해야 할 정도로 극단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주점 주방, 바텐더, 드라마 단역 등 이것저것 많이 했죠. 드라마 출연을 못하면 더 어려워요.” 서 예술감독은 극단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등에 꾸준히 단역으로 출연해왔다. <엽기적인 그녀> <명불허전>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등 드라마에 출연했고, 2020년 개봉한 영화 <나의 이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나의 사람아>에도 출연했다.
비상은 코로나19로 지난 3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공연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단원들도 하나둘 극단을 떠났다. “예산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빠듯하죠.” 서 예술감독은 “월급을 받는다고 하지만 많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며 “단원들이 돈 때문에 정들었던 극단을 떠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10월 단원 5명이 새로 입단해 극단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비상 단원은 서 예술감독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됐다.
“강서구립극단을 널리 알리려고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서구립극단은 직장인 연극교실 ‘꿈따모’와 청소년 연극교실을 운영한다. 꿈따모는 ‘꿈을 따러 가는 사람들의 모임’을 줄인 말이다. 꿈따모는 올해 서울 시민연극제에 처음 참가해 4일 <청년창업 고군분투기>를 공연했다. 서울 시민연극제는 9월26일 시작해 오는 10월22일까지 성동구 성수1가 성수아트홀에서 열리는데, 서울 자치구마다 한 팀씩 참가해 매일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서 예술감독은 “꿈따모는 매년 1회 정기공연을 하고 청소년 연극교실은 겨울방학 때 공연한다”며 “앞으로 구민들이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연극 동아리를 활성화하는 데도 힘을 쏟겠다”고 했다.
“새로운 연출자와 계속 작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연기력도 늘고 연기의 폭도 넓어집니다.” 비상은 12월8일부터 10일까지 정기공연 <우리 동네>(연출 김성수)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읍내>를 각색해 1970대부터 90년대까지 사회상을 담았다. 마을 공동체를 통해 따뜻한 감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예술감독을 맡은 뒤 첫 작품인데, 연출을 외부에 맡겼다. “구청 소속이라서 너무 슬프거나 정치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은 피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과 웃음, 행복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거든요.”
서 예술감독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웃음이 많이 사라졌는데, 웃음을 찾아주는 작품을 해보자고 해서 선택했다”고 했다. 12월4일에는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까치산 아트리움에서 뮤지컬 갈라쇼도 공연한다.
강서구립극단은 내년이면 창단 20년을 맞는다. “사설 극단도 20년을 이어오기 쉽지 않지만 구립 극단은 더 어려워요. 세금이 들어가니까 위에서 없애자면 간단히 없앨 수 있는 극단이지만, 20년 가까이 잘 버텨온 것은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했다는 의미겠죠.” 서 예술감독은 “후배들에게도 기회의 장이라서 잘 보전해서 물려주는 게 내 역할 중 하나”라고 했다.
“단원들에게 방송 활동을 못하게 했는데, 앞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 외부 활동도 열심히 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서 예술감독은 “연기자는 어디가 됐든 불러준다면 고마운 일”이라며 “연극무대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빛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라고 했다.
“연극 대회가 있다면 어디든 참여해 극단을 알리고 싶습니다. 강서구를 벗어나 대학로, 전국, 해외로 ‘비상’하는 극단이 돼, 배우들이 입단하고 싶은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서 예술감독은 “예술감독에게는 헌신, 좋은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좋은 배우 시스템, 복지가 갖춰지면 극단이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다”고 했다.
서 예술감독은 2021년 7월 코로나19에 걸려 의식을 잃고 두 달 동안 중환자실에서 지낸 경험을 얘기했다. “눈떠보니 한 달 반이 지났더라고요. 기적처럼 살아났죠. 지금은 덤으로 사는 삶입니다.” 서 예술감독은 “그때 이후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살자고 결심했지만, 연기 욕심만은 그렇게 못하겠더라”며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도 배우로서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바랐다.
글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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