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전쟁 직전 이미 3천명 사상…툭하면 맞고 있었다
이스라엘 올해 거센 공격 계속해와
6~9월에만 1504명 체포, 학교 철거도
“나크바(대재앙) 75주년 아닌 75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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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가자의 참극에 대해 다룬 한겨레21 1484호 기사는 다음 링크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4515.html
지독히 낯익은 참극이 펼쳐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민간인을 향한 반인도적 범죄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진다. 분노가 선택적일수록, 비극의 그림자는 짙어진다. ‘지옥은 텅 비었다.’ 모든 악마가 여기, 우리와 함께 있다. 미국 진보매체 <데모크라시나우>는 2023년 10월9일 피해자 가족의 애끓는 사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 하마스 테러범의 수레에 실려간 두 딸과 아내
“어제 아내 도론이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가자지구 인근 니르오즈 키부츠에 사는 장모님을 뵈러 갔다. 큰애 라즈는 5살, 작은애 아비브는 2살이다. 아침에 아내에게 전화했는데, 집 안에 테러범들이 있다고 했다. 나중에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비디오를 봤다. 아내와 두 딸, 장모님이 수레 비슷한 데 실려 있었고, 하마스 테러범들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 하마스 쪽에 요청한다. 제발 가족을 해치지 말아달라. 어린아이를, 여성을 해치지 말아달라. 가족 대신 나를 원한다면, 기꺼이 갈 준비가 돼 있다.”(이스라엘 주민 요니 아세르)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굉음이 들리더니 모든 게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아이들은 내 곁에 있었다. 한 명은 내 발 옆에, 또 한 명은 나와 나란히 있었다. 남동생 사베르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 아이들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사베르의 외침이 들렸다. ‘나 여기 있다’고 외쳤다. 구조대가 내 목소리를 듣고 안정시키고는 나를 덮은 건물 잔해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3시간 정도 걸렸다.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칼레드도 죽었고, 카이스도 죽었도, 마리암도 죽었고, 아세프는 아직 찾지 못했다.”(가자지구 주민 사프린 아부 다카)
2023년 10월7일 오전 6시30분께(현지시각) ‘지옥’의 문이 열렸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가 근거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겨냥해 로켓 수천 발을 쏘아올렸다. 비슷한 시각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 등 무장단체 소속 1천여 명이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분리한 철조망을 뚫었다. 작전명 ‘알아크사 홍수’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 쪽은 즉각 “전례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내 무차별적 공습을 개시했다.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졌고, 병력 30만 명이 가자지구를 에워싸고 있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선 하마스의 기습을 ‘이스라엘판 9·11 테러’로 규정하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또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향후 이스라엘 쪽이 어떤 행동을 하든 묵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미국은 항공모함을 가자지구 연안 지중해로 급파했다. 이스라엘군 쪽은 “미군 중부사령부의 정보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0월10일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지중해와 이스라엘, 이집트와 맞닿은 가자지구에서 유일한 활로는 이집트로 연결되는 남쪽 끝 라파 국경검문소뿐이다. 이집트 정부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격화하면서 안전을 이유로 라파 검문소를 전격 폐쇄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자기 땅에 갇혔다. 하늘에서 폭탄이 연일 비처럼 쏟아진다.
■ 학교 부수고 어린이도 공격했던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서방 쪽 주장과 달리 하마스의 공세는 ‘예상 밖’의 일이 아니다. 2023년 내내 이스라엘의 거센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9월 말까지 이스라엘군과 유대정착민(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한 유대인)에게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모두 230명에 이른다. 2022년 한 해 희생자 204명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이자, 2005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일방적으로 철군을 단행한 이래 최대 규모다. 2023년 들어 양쪽 갈등이 비등점을 향해 치달아왔음을 알 수 있다.
토르 베네슬란 유엔 중동평화 특별조정관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2334호(2016년)에 따라 제출한 정례보고서 최신판(2023년 6월15일~9월15일)을 보면 이런 상황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안보리는 결의에서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이스라엘 쪽이 모든 정착촌 건설 활동을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중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베네슬란 조정관은 “이스라엘 쪽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6300곳의 정착민용 주택 건설 계획을 지속하고 있고, 동예루살렘에서도 3580곳의 주택 건설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8월15일 데인사미야 지역의 팔레스타인 학생 80명이 다니는 학교가 새 학기를 앞두고 이스라엘 쪽에 의해 철거됐고, 팔레스타인 학생 6500여 명이 다니는 59개 학교도 철거 위기에 직면한 상태”라고 보고했다.
안보리 결의는 “민간인에 대한 테러 행위를 포함한 모든 폭력 행위와 도발 및 파괴 행위를 막기 위한 즉각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도 규정했다. 보고서 작성 기간 동안 어린이 18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주민 68명이 이스라엘 보안군에 의해 철거 충돌 군사작전 등의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같은 기간 여성 30명과 어린이 559명을 포함해 모두 283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271명은 실탄을 맞았다. 이와 따로 유대정착민의 공격을 받아 팔레스타인 주민 2명이 숨지고, 여성과 어린이 각각 6명을 포함해 모두 73명이 다쳤다.
같은 기간에 이스라엘 보안군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1042차례 수색체포 작전을 벌였고, 어린이 88명을 포함해 모두 1504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체포됐다. 이스라엘 쪽은 현재 1264명을 이른바 행정구금(기소나 재판을 거치지 않은 행정명령에 따른 인신 구속)한 상태로, 지난 10년여 동안 최대 규모다. 하마스의 공세 직전까지, 가자는 대체 어떤 상황이었나?
■ 75만 명이 어느 날 갑자기 난민이 됐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당시, 팔레스타인 주민 약 75만 명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다.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을 팔레스타인에서 ‘나크바’(대재앙의 날)로 부르는 이유다. 가자지구 주민 60%가량이 당시 난민의 후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오랜 갈등을 접고 1993년 9월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는 ‘2국가 해법’이 뼈대다. 이에 따라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서안 지역 라말라에 들어섰다.
평화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2005년에야 가자지구에서 유대정착민과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듬해인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선거가 실시됐다. 결과는 ‘변화와 개혁’을 내건 하마스의 압승이었다. 자치의회 전체 132석 가운데 하마스가 절반을 훌쩍 넘은 74석을 차지한 반면, 아라파트의 후계자인 마무드 아바스 대통령이 이끈 집권 파타당은 4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이 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집트에서 출발한 무슬림형제단의 가자지구 지부 격으로 1987년 창설된 하마스는 정당이자 빈민구제 단체이며, 산하에 무장단체까지 두고 있다.
같은 해 2월19일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 정부가 출범했다. 파타 쪽은 선선히 권력을 넘기지 않았다.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의 집권에 ‘경악’한 미국과 유럽연합 각국은 팔레스타인 원조를 끊었다. 무력시위와 봉쇄 위협을 가하던 이스라엘은 2006년 6월27일 작전명 ‘여름비’를 단행했다. 가자지구 철군 이후 첫 군사작전으로 그해 11월26일까지 다섯 달가량 이어졌다. 명목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탱크병 길라드 샬리트 상병 구출이었지만, 이스라엘 언론조차 “하마스 붕괴가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하마스 쪽은 파타까지 아우른 거국내각을 구성했지만, 파타의 하마스 흔들기는 계속됐다. 결국 2007년 6월13일 하마스 소속 무장요원들이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파타 보안군 본부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아바스 대통령은 즉각 거국내각을 해산하고 ‘비상내각’을 출범시켰다. 서안과 가자로 갈려 팔레스타인에 2개의 정부가 들어선 게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즉각 팔레스타인 원조를 재개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봉쇄에 들어갔다.
■ 물도 일자리도 없는데 봉쇄는 지속
팔레스타인 메잔인권센터가 2023년 3월 펴낸 ‘2022년 가자지구 경제·사회·문화권 상황 보고서’를 보면, 봉쇄 16년째를 맞은 가자지구의 오늘을 엿볼 수 있다. 가자지구 주민은 가자 밖으로 나가려면 이스라엘 쪽 허가를 받아야 한다. 2022년 도보로 이스라엘 출입이 가능한 에레츠 검문소 쪽에 출입신청을 한 가자지구 노동자 건수는 모두 7만9602건이다. 이 가운데 65.8%가 불허됐다.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50%에 육박한다.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한 이른바 ‘이중용도 품목’이란 명목으로 생산활동에 쓰이는 원자재·기계류·장비·부품 등의 반입도 엄격히 통제된다. 2022년 가자지구에서 운영되는 공장 40곳에서 기계류·장비·부품·원자재의 반입을 신청했다. 단 한 곳도 허가받지 못했다. 제조업자와 공장 운영자 등이 신청한 600건의 출입신청도 불허 처분을 받았다.
해상 봉쇄도 지속됐다. 이스라엘 해군은 팔레스타인 어민을 향해 474차례 총기를 사용해 23명이 다쳤다. 또 어린이 8명을 포함해 64명을 임의 체포했으며, 어선 23척을 압류했고 10차례 어업용 장비를 파손했다.
만성적인 마실 물 부족 사태도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폭격이 이어지면서 가자지구 수원지에서 나온 물 96.2%는 세계보건기구의 음용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밖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전력난도 심각하다. 가자지구에서 한 해 필요한 전력량은 420㎿인데, 자체 조달 가능한 양은 189㎿가 고작이다. 필요량의 절반이 넘는 237㎿가 부족해 역시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통해 추가 공급받아야 한다.
봉쇄 이후 물도, 전기도, 식량도, 의약품도 이스라엘이 손에 쥐고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스위치’가 됐다. 봉쇄된 가자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 됐다.
이스라엘은 봉쇄된 가자를 툭하면 때려댔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점령지인권정보센터’(베첼렘)의 자료를 보면, 2008년 12월27일부터 해를 넘겨 22일간 이어진 작전명 ‘케스트 리드’로 가자 주민 1391명이 숨졌다. 사망자 가운데 759명은 민간인이며, 318명은 18살 이하다.
이후에도 △필라 오브 디펜스(2012년 11월, 167명 사망) △프로텍티브 엣지(2014년 7월8일, 2203명 사망) △가디언 오브 더 월(2021년 5월10일, 232명 사망) △브레이킹 돈(2022년 8월5일, 33명 사망) 등 대규모 군사작전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 무한 폭력의 독트린, 혹은 국가테러주의
‘다히아 독트린’이라 한다. 가디 아이젠코트 전 이스라엘군 합참의장이 고안한 ‘비대칭적 군사전략’이다. 적대세력의 민간용 사회기반시설을 파괴하는 압도적 무력을 행사해, 그들의 전투요원들이 이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이다. 2006년 레바논의 무장 정치단체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일 때 이스라엘군이 초토화한 베이루트 인근 다히아 지역에서 따온 이름이다.
전력망과 상하수도를 비롯한 가자지구의 기반시설은 지난 16년 동안 초토화됐다.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2008~2014년)을 지낸 리처드 포크 미국 프린스턴대학 명예교수(국제법)는 “무한 폭력의 독트린은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바로 국가테러주의”라고 짚은 바 있다.
이스라엘은 또다시 ‘가자지구 전면 봉쇄’를 발표했다. 식량과 마실 물, 연료와 전기 공급이 차단됐다. 가자지구 유일의 발전소는 연료를 다 소진한 채 10월11일 운영을 멈췄다. 가자지구 병원들은 자체 발전기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 등 구호단체의 설명을 종합하면, 하루이틀이면 연료가 동나 전기가 끊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예비군 30만 명을 동원해 가자지구를 포위하고 지상군 투입 태세를 벼르고 있다.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들은 “하마스를 끝장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은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2023년은 나크바 75주년이 아니다. 나크바는 75년째 지속되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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