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휴전 결의안 거부…‘안보리 마비’ 러시아 비난했던 미국의 ‘내로남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이스라엘·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논의했으나 미국의 거부로 채택이 무산되면서 또 다시 분열을 드러냈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의장국인 브라질이 제출한 결의안 초안에는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을 촉구하고,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이스라엘 인질의 즉각적인 석방,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12국이 이번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러시아와 영국은 기권했다. 이전과 달리 대다수의 이사국이 지지를 표하면서 이번에는 결의안이 채택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됐다.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결의안에 매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안보리를 마비시키고 있다고 비난해 온 미국이 러시아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사회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자위권 언급이 없는 결의안은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이번 결의안이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을 방해할 수 있다면서 “이스라엘의 자위권 언급이 없는 결의안 초안에 미국은 실망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규탄하는 안건이 안보리에 회부될 때마다 이스라엘을 보호해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1982년 이후 미국은 안보리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수십번의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브라질 대사는 결의안 채택 실패에 대해 “매우 슬프다”면서 “이사회의 침묵과 무대응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엘파이스는 세계 평화와 안보 보장을 담당하는 기구의 활동이 상임이사국 한 곳의 반대로 저지되는 무능력하고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에콰도르 대사도 “거부권 메커니즘으로 인해 결의안을 채택할 수 없는 점을 다시 한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고, 아랍에미리트(UAE) 대사도 “국제법의 원칙이 매순간 짓밟히고 있다”고 한탄했다.
브라질이 제출한 결의안 표결에 앞서 러시아가 제출한 결의안도 모두 부결됐다. 러시아는 브라질의 초안에 가자지구 내 민간인 공격에 대한 규탄 문구를 추가한 수정안과 휴전 문안을 추가한 수정안을 각각 제출했으나 가결에 필요한 9개국의 찬성을 얻는 데는 실패했고, 미국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러시아는 앞서 지난 16일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인도주의적 휴전과 인질 석방, 인도주의 구호물자 접근 허용 등을 촉구하는 자체 결의안을 안보리에 제출했으나 채택에 실패했다. 러시아 대사는 “미국의 위선과 이중 잣대를 다시 한번 목격했다”고 비판했다.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이날 미국 의회의사당에는 ‘즉각 휴전’이라고 적힌 옷을 입은 수백명의 시위대가 몰려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대량 학살을 중단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들은 반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 성향인 유대인 단체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소속 활동가들이다. 건물에 들어오지 못한 채 바깥에서 시위를 벌이는 인원도 약 500명에 달했다. 이번 시위로 3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고, 의사당 주변 도로가 폐쇄됐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한 바 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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