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색깔로 당당하게…여자 솔로 가수들의 ‘조용한 반란’
‘단 10분이면 누구든 내게 반하게 만들 수 있다’(‘텐 미니츠’·2003)며 도도하고 자신만만한 유혹의 눈길을 보내던 이효리. 그가 20년 뒤인 지난 12일 발표한 신곡 ‘후디에 반바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너네 장단에/ 안 맞춰 마이 웨이/ 답은 간단해/ 내 입맛대로 런웨이/…/ 후디에 반바지/ 입고 당당하게 걸어”라며 털털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내세운다.
걸그룹 전성시대에 여자 솔로 가수들이 잇따라 컴백해 반격을 노린다. 아니, 반격이 아니다. 이들은 남들과 경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자신만의 생각·색깔·음악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자 한다. 이를테면 ‘조용한 반란’이다.
이효리는 1998년 1세대 걸그룹 핑클로 데뷔한 이래 탄탄대로를 달렸다. 2003년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더 큰 인기를 누렸다. 예능과 광고계까지 접수했고, 그의 모든 것이 곧 트렌드였다. 2013년 그는 기타리스트 이상순과 결혼하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종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정규 6집 ‘블랙’(2017)도 발표했다. 그러다 최근 안테나로 소속사를 옮기고 6년 만에 발표한 신곡이 ‘후디에 반바지’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후디에 반바지’ 차림처럼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자신만의 밸런스를 찾아가겠다는 게 이 노래의 메시지다. 이효리는 소속사를 통해 “이제는 각자의 삶은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강하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하기보다 편하게 지금의 제 생각을 전달하고자 했다. 앞으로는 거창한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보다는, 가볍고 편하게 계속 음악 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가수 선미도 지난 17일 싱글 ‘스트레인저’로 컴백했다. 2007년 걸그룹 원더걸스로 데뷔한 그는 2013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24시간이 모자라’, ‘보름달’, ‘가시나’ 등 솔로 히트곡들은 선미만의 색을 담은 ‘선미팝’이라 불렸다. 그는 이날 싱글 발매 쇼케이스에서 “이번 싱글은 ‘선미스럽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진지한데 어딘가 웃긴 게 바로 선미스러움인 것 같다”며 웃었다.
선미는 이제 예뻐 보이려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는 “(팬들이) ‘원더걸스 때도 선미는 어딘가 좀 엉뚱했다’는 걸 많이 기억해주고, 그 모습을 사랑해주는 것 같다. 17년차가 되니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선미는 이런 캐릭터야. 다들 알지?’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적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았다. 그는 ‘스트레인저’가 차트 1위를 하면 “폭우 속에서 춤을 추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도 “성적이 좋았든 좋지 않았든 모두 저의 디스코그래피다. (제 음악 결과물을) 전시하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히트곡이 되느냐 마느냐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겠다는 소신과 여유가 엿보인다.
과거엔 댄스곡에서도 여자 솔로 가수들이 맹활약했다. 김완선, 엄정화, 보아, 아이비, 손담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케이(K)팝 그룹이 대세가 되면서 처음부터 솔로로 데뷔해 성공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대신 이효리, 선미, 화사 등 걸그룹 출신 솔로 가수들이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신곡 ‘패스트 포워드’로 컴백한 전소미를 비롯해 청하 등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솔로 가수도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솔로 가수가 멤버별로 다채로운 매력을 갖춘 걸그룹보다 빛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걸그룹은 전속계약 기간 7년마다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많은 걸그룹 멤버들이 솔로 활동 병행을 원하는 이유다. 물론 모두가 솔로로 성공할 순 없다. 솔로 가수로 우뚝 서는 이는 극소수다. 어떤 이들은 연기자, 방송인 등 다른 길을 찾기도 한다.
국외 팝 시장에선 여자 솔로 가수가 오랜 세월 활동하는 사례가 많다. 마돈나(65)는 최근 박테리아 감염을 이겨내고 영국 런던에서 열두번째 월드투어 ‘셀리브레이션’을 시작했다. 셰어(77)는 20일 생애 첫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을 발표한다. 카일리 미노그(55)는 지난 9월22일 정규 16집 ‘텐션’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김완선, 엄정화 등이 이런 사례를 만들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
연륜 있는 솔로 가수들로 걸그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려는 시도도 있다. 오는 27일 첫 방송하는 음악 예능 ‘골든걸스’(한국방송2)다.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이 인순이·박미경·신효범·이은미로 이뤄진 걸그룹을 데뷔시키는 과정을 담는다. 박진영은 “지금의 케이팝을 프로듀스하는 우리 세대가 있게 해준 우리 윗세대의 뛰어난 아티스트들을 소개함으로써 케이팝이 어떤 흐름을 가지고 왔는지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가요계 시장이 조금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취지를 전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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