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눈덩이 CJ가 최고의 예능 선수를 나영석 사단에 투입했을 때('콩콩팥팥')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경제 뉴스에 관심이 있다면 콘텐츠 왕국이었던 CJ ENM이 지금 얼마나 난감한 상황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부터 예능까지 내놓은 콘텐츠들이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예능의 경우 티빙과 tvN이란 독자적 플랫폼과 채널의 브랜드를 갖춘 신흥 명가로 지상파 예능 이후 시대를 이끌어가기도 했지만, 지난 2년여 간 이름값 높은 CJ 소속 예능PD들은 이직과 스튜디오화 등의 방법으로 대거 엑소더스를 감행했다.
그래서일까. 뉴욕 양키스가 긴 세월 믿고 맡긴 구원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처럼, tvN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파고 있는 나영석 사단(에그이즈커밍)을 급히 TV무대로 호출했다. 그 덕분에 목요일에는 <출장 소통의 신-서진이네>, 금요일에는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와 자칭 채널 십오야의 텐트폴 콘텐츠 <이서진의 뉴욕뉴욕2>까지 나영석 사단의 콘텐츠 3편을 주말을 앞두고 만날 수 있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소통의 신'은 애초에 방송 콘텐츠의 작법과 예산을 떠난 웹콘텐츠 제작으로 선회하면서 나온 기획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의 신' 기획은 연예인 출연자 한 명 없이, 나영석 PD를 중심으로 한 사내 콘텐츠에 가까운 웹콘텐츠다. 그간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매개를 통해 대중과의 호감, 친밀도, 충성도를 쌓았다면 보다 직거래를 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였다. 그리고 이런 접근 덕분에 방송에 이어 웹콘텐츠 생태계에서도 나영석 사단의 채널은 가장 에너지 넘치며 트렌디한 웹예능 채널로 거듭나는 중이다. 더 나아가 웹예능 콘텐츠를 스핀오프화 한 이벤트성 TV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높아진 유튜브채널의 영향력을 활용해 라이브방송, 티져 영상 등등 신규 TV프로그램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는 등 유튜브에서 다진 영향력을 TV로(혹은 tvN으로) 다시 불어 넣고 있다.
tvN 신규예능 <콩콩팥팥> 또한, 나이브한 제목만큼이나 최근 나영석 사단의 웹예능화 무드가 강하게 드러나는 예능이다. 대충 보면 재탕이라고 할만도 하다. <삼시세끼>로 익숙한 강원도 시골 마을을 다시 한 번 찾아가, 그곳에서 초짜 연예인들이 노동(농사)을 하면서 보여주는 슬로우 라이프 속에서 담아내는 좋은 사람들의 관계와 모습에 관한 예능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영석 사단의 예능과 가장 이질적이다. 출연진부터 왠지 조인성이나 유재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광수,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 모두 나영석 사단과는 처음 함께하는 조합이다. 농촌에서 연예인들의 농사라는 게 <삼시세끼>에서 자주 본 그림이긴 한데 나영석 사단의 인장이라 할 수 있는 특유의 동화적 공간을 구현하던 장치와 디테일을 시원하게 걷어냈다. 같은 시골인데 제작진이 마련한 매력적인 공간 인테리어 및 미식 콘텐츠가 없다. 특별한 꾸밈없는 실제 민박집과 농막에서 쉬고 편의점 음식을 먹는다.
나영석 사단이 다루는 노동이 리얼하지만, 현실의 비릿함이 없는 동화일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의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를 제거한 낭만을 품은 공간의 미학에 있다. 경제적, 현실적 문제 등 일상과 괴리된 특수한 울타리 안에서 좋은 사람들의 맛과 멋을 보여주는 방식이 <삼시세끼>나 <윤식당>식 콘텐츠의 핵심인데, 이 프로그램은 일상과 연결된 시공간 안에서 필요한 것들은 사비로 해결하면서 두 달 여 동안 작물을 키운다. 그간 <서진이네>나 <삼시세끼>나 팝업처럼 진행했다면 이번엔 조금 멀고 커서 그렇지 과거 KBS2 <인간의 조건-도시농부>처럼 주말농장을 실제 친분이 있는 출연진이 일구는 콘셉트다.
일상과의 연결을 짓다보니 가장 큰 차이는 '마련'의 주체다. 제작진은 밭만 마련해 놓았을 뿐 그 외에는 출연진이 풀어가야 한다. 무엇을 어디서 시작해 어떻게 해야 할지, 숙소 잡기부터 잡다한 경비 지출까지 출연진이 그들의 놀이 문화인 듯한 스톱워치 룰렛으로 내기를 하고 사비로 지출한다. 친분 있는 청춘들이 불시에 여행을 떠나는 <꽃보다 청춘> 시리즈의 변주다.
사비 지출을 콘셉트로 내세운 예능으로는 최근 정규 편성된 MBN <니돈내산 독박투어>도 있다. 하지만 차이점은 희비교차를 과장되게 보여주고 기상천외한 게임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원래 친구들끼리 해오던 놀이문화를 가져온 진정성과 소소한 재미차원의 담담함 정도로 다룬다는 점에서 보다 리얼하게 다가온다. 이 장면들은 굉장히 강조되는데, 이 스톱워치 룰렛의 흥행 여부가 이 프로그램 흥행의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일 정도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보다 작고 가깝고 가벼운 웹콘텐츠의 접근법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변화를 두고 '다큐멘터리'라는 홍보 문안을 많이 쓰는데, 다큐적인 접근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관찰 예능의 디테일을 거의 걷어내는 등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외주 촬영팀을 기존 방식으로 쓰지 않으면서 카메라 대수를 대폭 줄이는 등 제작 규모를 간소화해 웹예능 콘텐츠처럼 접근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관전포인트는 아무래도 나영석 사단과 아시아 프린스 이광수의 만남이다. 재밌게도 예능의 재미란 편집과정을 통해 창조한다는 모토를 가진 나영석 사단도 국내 최고의 예능 공격수라할 수 있는 이광수의 매력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한다. 페이크다큐멘터리에서 보듯 잠시 화면을 빠져나와 인터뷰 하는 장면들을 한 번씩 볼 수 있는데, 그 대상 또한 주로 이광수가 된다.
예능감을 다른 의미로 증명한 도경수와 김우빈은 배우 출연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과 인간미를 역시나 담당하고, 패션 유튜버로도 친근한 김기방은 예의 그 호탕함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등 운신의 폭이 딱히 넓지 않은 주변 상황에서 이광수는 뱀 목격담만으로 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김우빈은 아무래도 힐링 하는 여행예능을 해야 한다는 인터뷰, 김기방을 자제시키는 포인트 등 숱한 장면들을 만들어내면서 이야기와 웃음, 제작진과의 호흡 등 첫 회부터 큰 활약을 하며 이끌어나갔다.
1회는 1차 목표인 3% 시청률을 넘겼다. 워낙 다양한 사전 홍보가 이뤄져서 첫 회라는 게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제 첫 발을 내딛었다. 아마도 앞으로 계절이 익어감에 따라 수확의 기쁨과 노동 과정에서의 성장 등 이른바 작물이 자라나는 시간에 맞게 주말농장에 갖게 되는 애정과 성장 서사, 즉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멋과 맛을 내는 기존의 레시피를 접어두고, 웹예능이란 새로운 장르를 마스터하고 있는 제작진이 이광수라는 최고의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나갈지, <런닝맨> 사단을 벗어난 최고의 예능 선수 이광수와 최고 예능 제작진의 만남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역시나 이번에도 다음 방송이 기다려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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