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 선배’ 류현진이 본 후배들의 항저우AG 활약…이정후 MLB 진출, “적응 빨리하면 경쟁력 충분”

배재흥 기자 2023. 10. 1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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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멕시코전에서 투구하는 류현진. 게티이미지코리아



2008 베이징 올림픽은 한국 야구사에서 두고두고 회자 될만한 대회다. 당시 9전 전승으로 금메달 신화를 쓴 한국 야구대표팀은 대회 이후 수많은 야구 꿈나무들을 양산해 프로야구의 부흥을 이끌었다. 한국 야구와 찬란한 순간을 함께했던 ‘베이징 세대’는 저물어가고 있지만 이정후(키움), 강백호(KT) 등 ‘베이징 키즈’가 리그와 국제무대에서 선배들의 뒤를 잇고 있다.

류현진(36)은 한국 야구의 황금기를 연 주역이다. 2006년 KBO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2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의 등장은 그야말로 ‘괴물’ 같았다. 그는 프로 첫해 30경기(201.2이닝)에 등판해 18승 6패 1세이브 204탈삼진 평균자책 2.23의 성적으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을 동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류현진과 대표팀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 성인 대표팀에 선발된 류현진은 2년 뒤 베이징 대회 결승에서 쿠바를 상대로 8.1이닝 2실점 호투로 한국에 금메달을 안기며 ‘국대 에이스’로서 완벽하게 자리매김했다. 류현진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동안 한국은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호성적으로 승승장구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기뻐하는 야구대표팀. 연합뉴스



2012시즌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류현진의 대표팀 마지막 경력은 2010 광저우 대회로 남아있다. 그가 대표팀을 떠나 있는 사이,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서서히 잃었고, 지난 3월 개최된 2023 WBC에서는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한국은 최근 열린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세대교체’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만 25세 이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됐던 이번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 속에서도 ‘대회 4연패’를 거두며 류현진 등 선배들이 일군 업적을 이어갔다.

류현진의 눈에는 한국 야구에 닥친 위기를 정면 돌파한 후배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지난 1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류현진은 국내 취재진과 만나 “경기를 전부 다 보진 못했지만, 하이라이트를 통해 지켜봤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냈다”며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한국을 이끌어 나가야 할 선수들이기 때문에 이번에 우승한 것이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류현진이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 이정후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KBO에서 7시즌을 보낸 이정후는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올겨울 빅리그 진출을 타진한다. 이정후가 계획대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2023시즌을 끝으로 토론토와 계약이 종료돼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된 류현진이 다음 시즌 메이저리그에 잔류한다면 둘의 맞대결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류현진은 “우리나라 최고의 타자고, 모두가 인정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빨리 적응만 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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