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과 박성훈, 어른 없는 세상의 진짜 어른들('유괴의 날')
[엔터미디어=정덕현] 유괴범과 형사 그리고 유괴된 아이. 이들이 하나로 뭉친 조합은 결코 펑범하지 않다. 이 유괴범 김명준(윤계상)은 자신이 유괴한 아이 로희(유나)를 지켜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그들을 추격해온 형사 박상윤(박성훈)과 어쩔 수 없이 추격전을 벌이면서도 연실 "미안해요"라고 말한다. 이들을 추격하는 형사 박상윤은 유괴범인 김명준을 체포하려 하면서도 그를 이해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들여다보려는 이 형사는 모두가 김명준을 유괴범이라 예단할 때도 그들의 관계가 단순한 유괴범과 유괴된 아이의 관계가 아니라는 걸 간파해낸다.
유괴된 아이 로희도 마찬가지다.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고 그래서 사태 파악과 대처능력이 뛰어난 로희는 자신을 유괴한 김명준을 오히려 쥐락펴락한다. 그러면서 김명준이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줄 어른이라는 걸 알고 그에게 의지한다. 이러니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공조하는 광경이 평범할 수 없다. 이 장면에는 그래서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이라는 작품이 이 특별한 조합을 통해 던지고 있는 풍자 가득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건 진정한 어른이 부재한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유괴의 날>은 이른바 '천재 아이 프로젝트'라는 비밀스런 연구를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켜온 비정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왔다. 로희는 그렇게 연구를 위해 입양된 아이였고, 그 연구의 성공 사례였다. 하지만 연구를 위해 아이들을 입양하고 성과가 없으면 파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로희의 양부모는 살해됐고 기억을 잃을 채 그 집을 빠져나온 로희는 마침 그를 유괴하려던 어설픈 유괴범 김명준에 의해 유괴됐지만, 그건 사실상 구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드라마는 도대체 누가 로희의 양부모를 살해했고, 로희에게 어쩐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추적하면서, 이 프로젝트 뒤에 이를 지원하는 모종의 세력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큰돈을 벌려는 해외투자 총책임자 제이든(감영석) 같은 인물이나 발달이 늦은 딸을 위해 이 연구를 지원한 모은선 박사(서재희) 같은 인물이 그들이다. 그들이 연구의 성공사례인 로희를 납치하려 하고, 그 성과인 연구보고서를 찾아내려 하면서 유괴범과 유괴된 아이지만 점점 부녀사이 나아가 친구사이처럼 가까워진 김명준과 로희는 저들의 추격으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이 모든 사건의 뒤편에 숨겨져 있던 김명준의 아내 서혜은(김신록)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는 김명준과 같은 보육원에서 자라나 '천재 아이 프로젝트' 연구를 하던 그 집에 김명준 대신 입양됐던 인물이었다. 본래 김명준이 입양대상이었지만, 그 집까지 따라왔고 테스트를 통해 한 명만 입양하는 시험에서 시험지를 바꿔 입양됐던 인물.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파양된 서혜은은 복수와 보상심리로 이 사건을 뒤에서 조종했던 거였다.
여기서 <유괴의 날>은 유괴라는 법 바깥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입양이라는 법적절차를 통해 아이를 데려왔지만 특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벌어진 파양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꼬집는다. 결국 그 어느 쪽도 아이를 아이로 보기보다는 목적으로 보는 관점이 들어 있지 않은가. 천재라고 해도 그저 11살 소녀인 로희를 평범한 또래 아이처럼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어설픈 유괴범 김명준이 저들과 대척점을 이뤄 오히려 이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는 아이러니에는 이런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시선이 담겨져 있다.
이건 거꾸로 말하면 이러한 계산적이고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는 진정한 어른 없는 세상에서 오로지 아이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이가 어떤 처지에 내몰리는가를 에둘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명준은 그렇게 유괴범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해 끝까지 아이를 지켜내려는 박상윤 같은 공명정대한 형사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윗선에서 더 이상 수사하지 말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수사를 이어오다 결국 정직까지 먹는 처지가 됐다.
어쩌다 유괴범이 된 김명준과 이제 정직을 먹어 공권력을 쓸 수 없게 된 형사 박상윤. 이들이 로희라는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공조하고 싸우는 광경은 그래서 보는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진짜 어른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서 이들이 만만찮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 한 편으로는 씁쓸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이 하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사회라니. 은유적으로 보면 어린 나이부터 엘리트로 만들기 위해 비정한 경쟁 속으로 내모는 것이 우리네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닌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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