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필수의료 살리기 ‘중추’로…역할 커진 ‘국립대병원’
정부가 19일 발표한 ‘지역·필수의료 혁신전략’은 지역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인 ‘국립대학병원’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국 17개 국립대병원(본원 10곳+분원 7곳)에 인력과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지역 내에서 의료 공급과 수요를 총괄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의사와 환자 모두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이 심각하다. 지난해 비수도권에 살면서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서울아산병원)에서 진료받은 인원은 71만여명에 달한다.
정부는 현재 교육부 소관인 국립대병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 국립대병원은 기타공공기관으로 인건비 총액 인상(연간 1~2%)에 제한이 따른다. 이에 민간 의료기관 의사와 개원의에 비교해 소득이 적다. 정부는 기타공공기관에서 해제하거나 예외 규정을 만드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국립대병원에서 수련 후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분원 포함)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수 정원도 늘리는 안을 추진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내년 초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립대병원의 중환자실, 응급실 병상·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을 지원한다.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료센터’(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등)에 대한 보상을 강화한다. 미국의 대규모 보건의료 연구투자 사업을 본뜬 ‘한국형 ARPA-H’을 추진, 필수의료 분야 연구개발(R&D)에 투자함으로써 국립대병원의 연구역량도 강화한다.
국립대병원은 그동안 수익구조가 열악해 의료 장비가 낙후돼 있다. 정부는 인프라 첨단화를 위해 진료시설 투자 지원비율을 25%에서 늘리기로 했다. 교육·연구시설 장비 지원(75%) 수준으로 상향하는 안이 유력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립대병원에 재정 투자를 집중적·지속해서 해 의사들이 남아 계속 일하도록 유인하고 이는 또 해당 의료기관의 의료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선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보건경제학)는 “지역 국립대병원들은 지역 내 평가가 대체로 좋기 때문에 인력과 시설에 과감한 투자를 해 (역량을 높인다면) 수도권 쏠림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필수의료 확충 방안 마련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정부의 필수·지역의료 위기 극복을 위한 적극적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장기적인 여행을 시작한 것”이라며 “당장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지역 내 병원 간 네트워크를 만들고 협력을 강화하면 현장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지역 필수의료 자원관리, 공급망 총괄관리, 각종 필수의료 지원사업·기관에 대한 성과평가 등을 주도하는 ‘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한다. 지역 내 보건소와 동네 병·의원 등 1차 의료기관, 지방의료원(공공병원)과 민간 종합병원 등 2차 의료기관, 필수의료 전문병원 등과 ‘협력 모델’을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일례로, 국립대병원의 전문의가 지방의료원 등에 정기적으로 출장진료를 나가는 협력 모델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현재 전국 14개 시·도에 10개 국립대병원 본원과 7개 분원이 있다. 정부는 국립대병원 본원 및 분원이 없는 인천과 울산은 사립대병원(가천대 길병원·울산대병원)에 권역 책임의료기관 기능을 부여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의 역할이 커지면서 향후 의대 정원 확충 때 국립대 의과대학의 정원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국립대병원 역할 증대와 국립대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서는 ‘의사 교수’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정부의 유인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또 국립대 의대를 졸업하더라도 의사들이 지역 국립대병원에 남아 일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전체 의사 수를 충분히 늘리지 않는 상태에서 의사들을 모으려고 하면 결국 의사들의 인건비가 급등하는 요인이 되고 현실적으로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늘리긴 어렵다”고 했다.
지역 내 1·2차 공공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이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의료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 해제 후 손실이 커 재정난을 겪고 있고 일부 진료과목은 의사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공중보건의 지원이 줄어 의사가 없는 보건소도 있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립대병원이 중추적 역할을 하되 지방의료원에도 상시로 근무하는 의사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보건소 등에도 의사가 있어야 한다”며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 신설 없이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의 인사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10191200011
https://www.khan.co.kr/politics/president/article/202310191341001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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