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예방·치유 위한 法도 중요하다[시평]

2023. 10. 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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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심리는 법 적용의 중요한 요건
법적 결정 때 ‘마음읽기’ 필수
정신·복지와 다학제 협업해야
한국 법률가는 이런 데 무관심
심리작용 다룬 법학 과목 없어
사후 재단하는 法만으론 한계

사람의 심리작용이 법 적용의 요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고의로 했는지, 예견·회피가 가능한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지, 자해·타해의 위험이 있는지, 증거인멸·도주 우려나 보복·재범의 위험이 있는지 등 무수하다.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법률가들이 마음 읽기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아동학대나 소년비행에 관한 법적 결정은 아동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발달심리에도 관심을 가진다. 여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법률가들은 ‘법’이 사회 구성원에게 미치는 사회교육적 효과, 즉 사회심리적 영향에도 관심을 갖는다. 직업 활동의 이런 특성 때문에 선진국의 법률가들은 복지전문가·심리상담사·정신과의사 등과 다학제적 협력에 익숙하고, 참여자들 역시 법률가들의 통찰력과 의견을 존중한다.

법률가들이 정치권에 많이 참여하는 선진국은 법률의 제·개정에서 사회 통합, 공동체의 안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중시한다. 강력범죄·권력남용·경제사범은 엄벌에 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며, 법 집행도 엄정하게 한다. 이런 범죄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이나 가족의 취약성 탓에 발생하는 범죄나 여타의 사회문제는 다부처적 협력 아래 그 개인·가족 또는 집단을 지원함으로써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법을 만든다. 그러잖으면 범죄로 이어지거나 중범죄로 비화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처벌만이 아니라 예방과 재활을 중시하는 셈이다.

미국이 아동학대예방법, 청소년비행예방법을 만든 것이나 영국이 아동법과 아동청소년법을 만든 것, 독일이 아동청소년지원법과 소년법원법을 만들어 대처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들 나라는 아동·청소년의 학대나 방임이 있을 때 부모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것을 우선한다.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형사 처벌보다는 민사적 개입을 우선한다. 친권 제한이 한 예이다. 범죄가 중독·질환·트라우마와 연관성이 있을 때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을 우선한다.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민사적 개입을 우선한다.

후견인 선임도 한 방법이다. 형사 처벌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둔다. 법 집행 과정에 참여하는 경찰·검찰·판사·변호사 등도 개인·가족의 취약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약을 처방하는 의사도 아니고 상담하는 심리사도 아니지만, 법과 집행 절차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법률가들도 이들 못잖게 치료·치유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치유법학(therapeutic jurisprudence)이란, 법이 가진 이런 치유력을 중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미국에서는 중독법원만 3000개가 넘는다. 개인과 가족 문제 해결을 지원하는 특화된 법원도 활발하다.

우리나라 법률가는 국민 마음 읽기에 관심이 없다. 심리작용을 다루는 법학 과목도 없다. 심리작용이 법 적용의 요건인 경우에도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는다. 문제없다고 불구속하거나 처벌하지 않았지만, 증거인멸·도주나 잔혹한 보복이 있을 때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지 반성하는 법조인은 전무하다. 이는 법률가가 아니라 정신과나 심리 전문가의 일로 치부해 버린다. 자신의 직업적 경험에 비춰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다각도로 검증해 판단하지 않는다. 아동·청소년·장애인·노인·정신질환자 등에 관한 법들은 처벌 중심이거나 형식 요건에 맞춰 금전 지원을 하는 법이 대부분이고, 예방이나 치유를 고려한 개인 맞춤형의 법률은 없다. 그 배경에 권력 작용에 익숙하고 또 관심 있는 법률가가 자리한다.

사람의 마음 읽기에 관심이 없는 법률가들이 정치권에 많으면 법·절차·사람의 치유력을 중시하는 법은 만들어질 수 없다. 획일적 기준에 따라 재단하고 처리하는 법률을 양산할 뿐이다. 이런 법으로는 가족과 공동체의 와해에서 비롯된 수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마음 읽기에 익숙하고,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심을 가진 법률가가 많아져야 저출산·고령화, 가족과 공동체 와해로 파생되는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치유할 법 제도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법률가는, 예리한 칼을 갖고 있지만 치유력 있는 손길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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