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속 살아남는 조선인 포로들 ‘연인’은 전쟁사이자 사회경제사

2023. 10. 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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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사극 ‘연인’ 파트2(사진)는 시작부터 병자호란 후 조선인 포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11~12회 전체를 이렇게 무거운 주제로 다뤘지만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극 중에서는 병자호란으로 인해 10만명이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처참한 모습들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이는 위정자들의 오판과 외교적 실패가 얼마나 비참한 상황으로 이어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줬다.

전쟁을 일으킨 홍타이지(청 태종, 김준원 분)는 포로를 다각도로 이용했다.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며 대국의 위용을 갖추면서 주변국을 공격해 확보한 한족, 몽골족, 조선족 포로들을 필요에 따라 이주시켰다. 국가 영토가 넓어진다 해도 새로 확보한 지역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지배력을 유지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연인’에서 유길채(안은진 분)는 도망친 조선의 포로들과 함께 끌려가던 중 몸종 종종이(박정연 분)가 지쳐 쓰러지기 직전임을 발견했다. 선양에 도착할 때까지 60여일 간 씻지도 못하고 끌려가는 상황에서 포로들이 속속 쓰러지고, 걷지 못하는 포로들은 죽임을 당했다. 이대로라면 종종이도 살해당할 수도 있는 상황. 이때 유길채는 품고 있던 노리개로 거래를 제안, 종종이를 수레에 태우는 기지를 발휘한다.

당시 조선인 포로들은 압록강을 기점으로 운명이 바뀌었다. 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어쩔 수 없지만, 도강을 한 포로는 도망치더라도 조선 조정이 다시 잡아 청국에 송환토록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도망쳐 탈출한 피로인(被擄人)들을 잡는 포로 사냥꾼이 존재했다. 극중 각화(이청아 분) 역시 포로 사냥꾼으로 나온다.

많은 조선의 포로들이 죽을 고비를 넘어 고향인 조선으로 도망쳤지만, 청나라는 이들을 의미하는 ‘주회인(走回仁)’을 송환(縛送·박송)하라고 도촉한다. 유길채도 도망 온 포로를 자기 집 머슴으로 들인 사실이 발각돼 청나라로 잡혀왔다. 탈출한 포로들이 청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을 당한다. 이에 주회인으로 박송되면 스스로 자결하거나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인 인조(김종태 분)는 어쩔 수 없이 청나라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는 극중에서 “도망간 노비를 찾아서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쇄송’ 일로 또다시 온 나라가 놀라움에 떨고 있다. (중략) 백성들이 아무리 나를 꾸짖고 원망을 한다 해도, 이는 나의 죄이니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고 말한다. 종묘사직을 지킨답시고 백성을 외면하는 유약한 왕의 전형이다.

조선에서도 사정이 이러하니 청나라의 심장인 선양에서는 오죽했으랴. 수시로 인간시장이 열려 포로에게 가격을 매겨 상품처럼 팔렸다. ‘연인’에서도 여성 포로들이 이곳저곳으로 팔려나간다. 운이 좋으면 청나라 관리의 첩이 되기도 했는데, 이 역시 본처나 첩의 투기로 혹독한 고생을 치러야 했다. 극중에서도 조선 포로사냥꾼 윤친왕의 애첩 화유(유지연 역)가 여성 포로들에게 “감히 왕야 앞에서 꼬리를 쳐?”라며 눈을 부라리고, 심지어 길채에게는 뜨거운 물이 끓고 있는 솥 안으로 끌고 가려하고 손가락을 자르려는 등 험한 일을 일삼는다.

민족적 아픔은 백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청나라의 볼모가 된 소현세자(김무준 분)는 포로시장의 처참함에 구토하며 좌절한다. 여기에 홍타이지는 소현세자 일행에게 식량 제공을 중단하며, 직접 식량을 마련하라고 통보한다. 다음 왕위를 이을 왕세자에게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처사다. 하지만 이장현(남궁민 분)은 그에게 “끝까지 버티소서”라고 말한다.

물론 소현세자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는다. 어릴 때 아버지가 농부들을 지휘하며 농사를 주관하는 걸 봤다는 강빈(전혜원 분)과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농사 일을 한 사람들”이라며 농사 노하우를 가진 늙은 포로들을 사온 이장현 등 주변 사람들 덕에 돌파구를 마련한다.

드라마 ‘연인’은 한 나라에 있어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 지 여실히 보여준다. 동시에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타개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갖은 고생과 수치를 겪었지만, 농사를 일궈내고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살아남는 조선인 포로들의 모습. ‘연인’은 전쟁사이자 사회경제사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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