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문래동 작은 공장의 가치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서울 5인 이하 제조업 영업益
부동산 업종 이어 두번째 많아
재료에서 완제품까지 뚝딱
서민경제 떠받치는 원동력
누군가는 사라질 산업을 사라지게 놔둬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작은 공장은 서민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생산성이 높고 업력業歷이 길기 때문이다. '개발 바람'에 둥지를 옮길 위기에 내몰린 문래동 작은 공장의 가치도 생각보다 훨씬 크다.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네번째 편에선 문래동의 숨은 가치를 조명해봤다.
도심 속 작은 공장은 시시때때로 흉물 취급을 받는다. 이를 보고 "사라져야 할 낡은 유산"이란 비판을 쏟아내는 이들도 숱하다. 작은 공장을 쓸어버리면 훨씬 더 큰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작은 공장의 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알게 모르게 서민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가치다. 통계청ㆍ중소벤처기업부가 5인 미만 사업체를 조사해 발표하는 '소상공인 실태조사(2021년 기준)'를 보자.
2021년 기준 서울의 산업별 업체당 매출액은 평균 2억2900만원이었다. 제조업의 사업체당 매출액은 2억7800만원으로 건설업(3억4900만원), 도소매업(3억1100만원)에 이어 세번째로 많았다. 자영업을 대표하는 숙박ㆍ음식점업의 매출액은 1억5200만원에 그쳤다.
사업체당 영업이익으로 보면 5인 미만 제조업의 가치는 더 돋보인다. 제조업의 사업체당 영업이익은 3600만원으로 부동산업(5600만원)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수준이었다. 뜻밖에도 건설업(3000만원)보다도 많았다. 숙박ㆍ음식점업의 영업이익은 1800만원으로 제조업의 절반에 그쳤다. 업력業歷을 따져봐도 15년 이상 영업 중인 제조업체는 38.5%로 모든 업종 중에서 비중이 가장 컸다.
이런 작은 공장의 가치는 '도시형소공인 지원 종합계획'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부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추진한 1차 도시형소공인 지원 종합계획에서 당시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은 "소공인은 서민층의 일자리 창출 원천이며 지역 산업의 기반"이라며 "생계형, 서비스업 대비 고용 지속 효과도 높은 산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도심 속 작은 공장은 '개발 바람 앞 촛불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재개발이 본격화한 2018년께 청계천ㆍ을지로 일대 작은 공장 중 상당수는 둥지를 잃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자리 잡은 문래동 역시 최근 불어온 '개발 바람'에 휘청이고 있다. 청계천ㆍ을지로에서 벌어진 '작은 공장 해체'의 뼈아픈 역사가 문래동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4편에서 문래동의 가치를 별도로 분석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래동 안 작은 공장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민경제를 떠받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실핏줄'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먼저 문래동의 현황부터 살펴보자. 2023년 현재 문래동에는 1279개의 작은 공장이 있다. 적은 수가 아니다. 원재료 가공부터 제품 생산에 필요한 수도권 1만796개의 공장 중 11.8%가 문래동에 있는 셈이어서다.
공장이 많은 만큼 문래동에선 제조업의 부품을 만드는 핵심 공정인 '6가지 공정(주조→금형→소성가공→용접접합→열처리→표면처리)'을 원스톱에 진행할 수 있다. 6가지 공정은 고체 금속을 녹여 액체화한 후 틀 속에서 냉각해 일정한 모양의 제품을 만드는 주조, 같은 형태의 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금속으로 틀을 만드는 금형, 재료에 힘을 가해 영구적으로 변형하는 소성가공, 금속ㆍ비금속 소재와 부품을 열이나 압력을 이용해 결합하는 용접접합, 금속소재와 부품에 가열ㆍ냉각을 반복 적용해 물성을 향상하는 열처리, 소재ㆍ부품 표면에 금속 등을 부착해 미관이나 내구성을 개선하는 표면처리로 이뤄진다.
문래동에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이 한번에 이뤄질 수 있는 이유는 주조 업체 29곳, 금형 업체 105곳, 소성가공 업체 1125곳, 용접접합 업체 94곳, 열처리 업체 15곳, 표면처리 업체 119곳(2017년 기준)이 고르게 둥지를 틀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연구용 부품ㆍ시제품 등 맞춤형 제조물이 필요한 기업이나 스타트업에 문래동은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다. 문래동에 제조를 맡기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개발 바람'에 문래동을 떠날 위기에 몰린 작은 공장들이 '함께 이전하길'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작은 공장 사람들만의 바람은 아니다. 맞춤형 제조물이 필요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작은 공장이 떠나야 할 시점은 눈앞까지 당도했다.
지난 4월 문래동 4가에는 재개발 조합이 설립됐다. 영등포구는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의 작은 공장들이 이전하면 그 자리에 4차 산업 거점을 육성할 계획을 세웠다. 올해 말이면 문래동 작은 공장이 이전할 후보지도 추려진다.
개발 계획만 작은 공장의 등을 떠미는 건 아니다. 가파르게 치솟은 임대료도 문제다. 문래동은 준공업지역이지만 공장만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작은 공장이 있었던 건물 중 상당수는 이미 일반음식점이나 카페로 바뀌었다.
올 하반기 매물로 올라온 문래동 건물을 보면 158㎡(약 48평) 기준 보증금은 4000만원, 월 임대료는 400만원에 이른다. 이곳의 권리금은 6000만~7000만원 수준이다. 굳이 개발로 인한 이전이 아니더라도 작은 공장은 고가의 임대료를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래동에서 10년 넘게 소성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A사장은 "맞은편에 있던 공장도 카페가 됐다"며 "그 카페에선 공장에서 나오던 임대료의 2~3배가 나올 텐데 건물주라면 당연히 올려받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문래동에선 '임대문의'가 붙어 있는 작은 공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작은 공장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다섯번째 편에서는 문래동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계획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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